갈아 끼울 수 있던 건 자리였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일하다 보면 한 번쯤은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아.” 화를 내며 던지는 것도 아니고, 큰일이라는 듯 무게를 잡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툭, 지나가는 말처럼 가볍게 흘러나오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볍게 던져진 말일수록 더 오래 남습니다. 그날 저녁까지, 어쩌면 며칠 동안 마음 한구석에 걸려 있곤 해요. 혹시, 익숙한 장면 아니신가요?

꼭 그 한마디만의 일은 아닙니다. 며칠 밤을 들여 정리한 일을 두고 “이건 누가 해도 똑같지” 하는 말을 들을 때, 면접 자리에서 “지원자야 많으니까요”라는 말이 스칠 때, 우리는 비슷한 자리에 섭니다. 딱히 욕을 먹은 것도 아니고 손해를 본 것도 아닌데, 묘하게 한 뼘쯤 작아지는 그 기분 — 한 번쯤은 겪어 보셨을 거예요. 큰 사건이 아니어서 그냥 넘기게 되는, 그래서 더 자주 반복되는 장면이죠.

그 말이 아픈, 진짜 자리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그 말이 아픈 건, 정말로 나를 대신할 사람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어지간한 일은 다른 누군가도 해낼 수 있는 게 맞습니다. 아픈 건 다른 데 있어요. 사람을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기능’으로 보는 그 셈법 자체가, 거기 있던 한 사람을 통째로 빠뜨리고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걸 들여다보는 한 문장을 남겼습니다. 흔히 ‘목적의 정식’이라고 부르는 말인데, 풀어 보면 이렇습니다 — 사람을 어떤 목적을 위한 도구로‘만’ 다루지 말고, 그 자체로 목적인 존재로 대하라는 겁니다. 여기서 작지만 결정적인 말이 ‘만’이에요. 우리는 일터에서 늘 서로를 어느 정도는 도구로 대합니다. 일을 부탁하고, 역할을 맡기고, 성과를 기대하죠. 그건 잘못이 아니에요. 다만 그 사람을 ‘오직 기능으로만’ 보고, 그 너머에 한 사람이 통째로 서 있다는 사실을 지워 버릴 때, 무언가 결정적인 것이 빠져나갑니다.

그러니 이건 말한 사람이 유독 못돼서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더 깊은 곳을 보면, 그 자리를 채우는 시스템에는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적는 칸은 빼곡히 있어도, ‘왜 하필 이 사람이었는가’를 적어 둘 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채용 공고에도, 업무 분장표에도, 인수인계 문서에도요. 그래서 자리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 말이 그렇게 가볍게 나오는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가 드러나요. 갈아 끼울 수 있는 건 ‘자리’였지, 거기 있던 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요. 자리는 누구로도 채워지지만, 그 사람은 원래 누구로도 대신되지 않습니다.

같은 시선이 닿는 자리들

이 시선이 닿는 곳은 일터만이 아닙니다. 집 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어요. 평생 가족을 먹이고 돌본 어른의 수고를 두고 “원래 그런 거지” 하고 넘길 때, 우리는 그 사람이 한 ‘일’만 보고 그 일을 해 온 ‘사람’은 슬그머니 빠뜨립니다. 집안일은 누가 해도 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그 자리를 그렇게 오래 지켜 온 사람은 단 한 명이었는데도요.

학교에서 아이가 출석 번호와 등수로만 불릴 때, 병원에서 내 이름 대신 대기 번호가 호명될 때, 콜센터 너머의 목소리가 ‘상담사 1번’으로만 흘러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효율을 위해 사람을 번호로 줄이는 일 자체를 탓하긴 어렵습니다. 그게 없으면 많은 일이 돌아가지 않으니까요. 다만 한 가지 시선으로 보기 시작하면, 사람을 ‘하필 그 사람’으로 맞아 주기보다 ‘아무나 한 명’으로 흘려보내는 자리들이 하루 곳곳에 스며 있다는 게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가끔은 내가 서 있었고, 가끔은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흘려보내는 쪽이었다는 것도요.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목적의 정식’이 처음 또렷하게 적힌 책이 칸트의 『도덕형이상학 정초』(1785)입니다. 얇지만 단단한 책이에요. 칸트는 여기서, 옳고 그름의 근거를 일이 가져올 결과나 이익에서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원칙’ 그 자체에 도덕의 자리를 놓으려 하죠. 결과가 좋으면 됐다는 식이 아니라, 사람을 수단으로만 쓰는 그 태도 자체를 다시 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구를 탓하라고 부추기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평소엔 너무 당연해서 지나치는 것 — 누군가를 ‘교체 가능한 기능’으로 볼 때 우리가 정확히 무엇을 빠뜨리는지를 가만히 짚어 줍니다. 오늘 들은 그 한마디가 왜 그렇게 오래 마음에 남았는지, 그 까닭을 천천히 따라가 보고 싶을 때 곁에 두기 좋은 책입니다.

저도 어제까진 그 말을 그냥 흘려들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 하고 넘겼고, 서운한 마음도 금세 잊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고요. 내가 누군가에게 ‘아무나 한 명’으로 스쳐졌던 순간뿐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스쳐 보낸 순간들까지요.

오늘 하루를 한번 돌아봐 주세요. 누군가를 ‘아무나’로 흘려보낸 순간은 없었는지, 혹은 내가 그렇게 흘려진 순간은 없었는지를요. 그리고 이왕이면, 그 반대편도요 — 오늘 누군가를 ‘하필 그 사람’으로 또렷이 바라봐 준 순간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어쩌면 그 작은 눈길 하나가, 갈아 끼울 수 있는 자리 위에 한 사람을 다시 세워 두는 일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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