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채우러 갔다가, 자리가 되어 돌아온 저녁

행사에 사람이 조금 부족하다는 연락이 옵니다. 자리를 채워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부탁을 받고 나가서, 시키는 대로 앉고 박수를 치고 단체 사진에도 함께 섭니다. 그러다 행사가 끝나면 "이제 가셔도 됩니다"라는 말이 돌아오고, 참석자 명단에서는 이름 한 줄이 조용히 지워집니다.

이런 장면은 생각보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정족수가 모자란다며 앉아만 있어 달라던 회의, 사진 한 컷을 위해 잠깐 끼어 달라던 자리, 급하다며 이름을 빌려 갔다가 일이 정리되면 소식이 뜸해지는 모임. 부를 때는 "꼭 좀 와 달라"였는데, 필요한 만큼 다 채워지고 나면 굳이 남아 있을 이유가 사라지는 자리들 말입니다.

섣부른 해석은 잠시 접어 두고, 이 저녁의 장면을 조금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다 채워지는 순간 사라지도록 놓인 자리

먼저 눈에 걸리는 것은 순서입니다. "가셔도 된다"는 말이 나온 때가 하필 머릿수가 다 채워진 바로 다음이라는 것. 그 전에는 들리지 않던 말이, 채움이 끝나는 순간 나옵니다. 시작과 끝을 정한 것이 그 사람의 사정이 아니라 자리가 다 찼느냐 아니냐였다는 뜻입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두 결로 나눠 보았습니다. 하나는 마주 선 상대를 그 자체로 만나는 관계, 다른 하나는 상대를 어딘가에 쓸 도구로 대하는 관계입니다. 그는 앞의 것을 '나-너', 뒤의 것을 '나-그것'이라 불렀습니다. 말은 어렵게 들려도 속뜻은 단순합니다. 누군가를 '무엇에 쓸 사람'으로 대하기 시작하면, 그 쓸 일이 끝나는 바로 그때 관계도 함께 끝나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결을 겹쳐 놓고 보면, 저녁의 장면에서 비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또렷해집니다. 모자란 건 고맙다는 인사나 약간의 사례비가 아닙니다. 명단에는 '머릿수를 채울 칸'은 잘 마련되어 있었지만, '와 준 사람이 남을 칸'은 처음부터 놓여 있지 않았다는 것 — 그 없는 칸이 빈자리입니다. 채우려고 마련한 자리는, 다 채워지는 그 순간 사라지도록 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여기서 짚어 두고 싶은 것은, 이게 누가 못돼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연락을 준 사람도, 그 명단을 만든 사람도 특별히 야박한 마음을 먹지는 않았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자리를 짜는 틀 안에 '사람이 오래 머물 칸'이 애초에 그려져 있지 않았을 뿐입니다. 누군가의 인색함보다, 시스템에 비어 있는 칸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순간입니다.

같은 결의 자리는 하루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일손이 급하다며 부른 사람은 바쁜 철이 지나면 "이번 주까지만"이라는 말과 함께 목록에서 빠지고, 막바지에 "자네가 꼭 필요하다"던 부름은 마감이 끝나고 나면 다음 자리로 이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명절에 일손이 모자랄 때만 걸려 오던 전화가, 정작 평소의 안부에서는 잘 울리지 않기도 하고요. 봉사자가 부족하다며 학교 행사에 불려 나간 학부모의 이름이, 행사가 끝난 뒤의 감사 자리에서는 어느새 지워져 있기도 합니다.

부르는 방식은 저마다 달라도 결은 닮아 있습니다. 부름 안에 '그가 해줄 몫'은 또렷하게 적혀 있는데, '그 몫이 끝난 뒤에도 그가 머물 자리'는 빈칸으로 남아 있다는 것. 그 빈칸이 채워지지 않은 자리에서는, 사람이 일과 함께 시작되고 일과 함께 지워집니다.

이런 시선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마르틴 부버가 백 년 전에 쓴 얇은 책 《나와 너》(Ich und Du, 1923)를 펼쳐 볼 만합니다. 부버는 이 책에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상대를 쓸모로 대하는 '나-그것'의 방식과, 마주 선 하나의 인격으로 만나는 '나-너'의 방식입니다. 그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려면 '나-그것'의 방식을 아주 버릴 수는 없다고도 인정합니다 — 다만 그것만으로 채워진 삶은 어딘가 메말라 있다고 조용히 짚습니다.

머릿수로 부르고 셈이 끝나면 지우는 자리를, 이 두 시선에 나란히 놓아 보면 저녁의 장면이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도구였을까요, 아니면 잠깐이나마 마주 선 '너'였을까요. 책은 답을 정해 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 물음을 손에 쥐여 줍니다.

저 역시 누군가를 부를 때, 그 사람이 '해줄 몫'을 먼저 떠올린 적이 많습니다. 급할 때 이름을 빌리고, 필요한 일이 끝나면 그 사람 생각도 함께 접어 두곤 했습니다. 그게 특별히 모진 일이라고 느끼지도 못한 채로요.

오늘 우리가 누군가를 불러 앉힌 자리들을 한 번 떠올려 봅니다. 그 자리에는 그가 '해줄 몫'만 놓여 있었을까요, 아니면 그 몫이 끝난 뒤에도 그가 머물 한 뼘의 자리가 함께 있었을까요. 부름 뒤에 남겨 둔 그 빈 쪽을 오늘 잠깐 들여다볼 수 있다면, 셈이 끝나는 순간 지워지던 이름 하나가 그 자리에 조금 더 머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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