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단톡방엔 못된 사람이 없었습니다

단체 대화방에 무심코 보낸 메시지 하나가 있습니다. 오타였을 수도, 조금 엉뚱한 말이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며칠 뒤, 누군가 그 메시지를 캡처해 다시 올립니다. 그 아래로 웃는 이모티콘이 줄줄이 달리고요. 화면 너머의 사람들은 그저 가볍게 웃고 있는데, 캡처된 쪽은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혹시, 비슷한 장면을 겪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꼭 단톡방만의 일도 아닙니다. 회식 자리에서 한참 지난 누군가의 실수담이 다시 안주로 오를 때, 단체 사진 속 한 사람의 표정만 골라 놀림감이 될 때, 오래전 어떤 흑역사가 모임 때마다 어김없이 소환될 때. 그 자리의 누구도 딱히 못된 마음을 품지는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한 사람만은 그때마다 조금씩 작아집니다. “그냥 장난인데 뭘 그래”라는 말이 가볍게 오가는 동안에요.

못된 사람이 없는데도 누가 작아질 때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웃는 이모티콘을 누른 사람들 중에 정말 못된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었을 거예요. 다들 그냥 분위기를 맞췄고, 가볍게 웃었을 뿐이죠. 그래서 누구를 탓하기도 애매합니다. 미워할 악당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바로 여기에, 우리가 자주 놓치는 한 가지가 숨어 있습니다. 사람을 작게 만드는 일이 꼭 누군가의 나쁜 마음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이스라엘의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품위 있는 사회’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좋은 사회를 가르는 기준이 사람들끼리 얼마나 서로 친절하냐를 넘어선다는 이야기예요.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다정해도, 그들이 모여 만든 제도와 공동체 자체가 사람을 깎아내린다면 그 사회는 아직 품위에 닿지 못했다는 것이죠. 핵심은 모욕이 개인의 악의가 아니라 ‘구조’에서도 올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눈으로 단톡방을 다시 봐볼게요. 한 사람의 실수가 지워질 자리 없이 캡처되고, 저장되고, 언제든 다시 소환될 수 있는 구조. 그 구조 안에서는 아무도 악의를 품지 않아도 누군가는 영영 작아질 수 있습니다. 화기애애해 보이죠. 그런데 그 화기애애함의 조건이 누군가의 실수가 끝내 사라지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건 즐거움이 아니라 모욕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그 방에 빠져 있던 건 좋은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 실수를 털고 돌아올 ‘자리’였던 거예요.

같은 시선이 닿는 자리들

이 시선이 닿는 곳은 단톡방만이 아닙니다. 병원 대기실에서 접수창구 앞에 줄을 선 채 큰 소리로 병명과 사정을 답해야 할 때, 그 사람을 곤란하게 하려는 직원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그렇게 짜인 동선이 사람을 머쓱하게 만들 뿐이죠. 누구의 잘못이라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려운데, 사람은 작아집니다.

성적을 등수대로 게시판에 붙이던 교실 풍경도, 누군가를 모욕하려는 선생님이 있어서가 아니었어요. 민원 창구에서 같은 사정을 몇 번이고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게 만드는 절차도, 담당자가 불친절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굳어진 제도여서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한 가지 시선으로 보기 시작하면, 딱히 미워할 사람이 없는데도 사람이 작아지는 자리들이 하루 곳곳에서 눈에 들어옵니다. 모욕은 의외로, 악당이 아니라 빈자리에서 자라더라고요.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아비샤이 마갈릿의 『품위 있는 사회』(The Decent Society, 1996)는 바로 이 빈자리를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저자는 좋은 사회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기준을, 사람들이 얼마나 잘 대접받느냐가 아니라 그 사회의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느냐에 두자고 제안합니다. 친절은 개인의 마음에 달렸지만, 모욕하지 않음은 우리가 함께 만든 구조의 몫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 책은 누구를 미워하라고 부추기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무심코 통과하는 제도와 관행 안에 사람을 작게 만드는 자리가 숨어 있지는 않은지 가만히 돌아보게 하지요. 오늘의 단톡방 장면처럼, 모욕이 꼭 누군가의 나쁜 마음이 아니라 구조에서 올 수 있다는 생각을 차분히 따라가 보고 싶을 때 곁에 두기 좋은 책입니다.

저도 그런 단톡방에서 같이 웃는 이모티콘을 눌렀던 적이 있습니다. 그땐 그냥 분위기를 맞추는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누구를 작게 만들 마음은 전혀 없었고요.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르게 보기 시작하니까, 그 웃음 뒤에서 조용히 작아지던 한 사람이 뒤늦게 보이더라고요.

오늘 하루, 여럿이 함께 가볍게 웃었던 장면이 있었다면 잠깐 낯설게 다시 봐주세요. 그 자리에 못된 사람이 있었는지를 찾자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 그 웃음의 자리에 혹시 누군가가 실수를 털고 돌아올 칸 하나가 빠져 있지는 않았는지 — 그 빈자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익숙했던 하루가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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