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력서엔, 자란 걸 적을 칸이 없었습니다
한동안 일을 쉬었다가, 다시 시작해 보려고 이력서를 펼치는 날이 있습니다. 화면을 띄우고 커서를 올려놓는데, 정작 제일 먼저 머릿속을 채우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이 비어 있던 시간을 대체 어떻게 설명하지’ 하는 걱정이 먼저 자리를 차지합니다. 자격증을 적는 칸보다, 공백을 해명하는 문장을 어떻게 다듬을지가 더 무거워지는 거예요. 혹시, 익숙한 장면 아니신가요?
꼭 재취업만의 일도 아닙니다. 오랜만에 나간 모임에서 “그동안 뭐 하고 지냈어?”라는 가벼운 질문 앞에 괜히 말문이 막힐 때, 서류 한 장을 채우다 ‘해당 없음’에 체크를 거듭하게 될 때, 우리는 비슷한 자리에 서 봅니다. 분명 그 시간에도 무언가를 견디고, 배우고,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왔는데 — 막상 적을 자리에 앉으면 ‘하지 못한 것’의 목록부터 길게 떠오르는 거죠.
먼저 읽히는 건, 내가 못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이력서라는 자리에서 제일 먼저 읽히는 건, 제가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제가 ‘하지 못한 시간’입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그 종이가 본래 묻고 싶은 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요”일 텐데, 정작 답하는 사람은 “저는 이 기간 동안 일을 멈췄습니다”부터 적게 되니까요.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역량 접근법’이라는 시선을 이야기합니다. 어렵게 들리지만 뜻은 단순해요. 한 사람의 존엄은 권리를 종이 위에 갖는 것만으로 서는 게 아니라, 자기 안의 힘을 실제로 펼칠 자리가 주어질 때 비로소 선다는 겁니다. ‘기회가 열려 있다’는 말과 ‘실제로 해 볼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거죠.
이 눈으로 이력서를 다시 봐볼게요. 그 양식에는 ‘공백 기간’을 적는 칸은 있어도, 그 공백 동안 무엇이 자랐는지를 적는 칸은 한 줄도 없습니다. 누가 못된 마음을 먹어서가 아니에요. 그저 그 양식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멈춤 없이 이어진 경력을 기준으로 칸이 짜여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잠시 길을 벗어났던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전에, 비어 있던 자리부터 해명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죠. 할 수 없는 것의 목록은 이렇게 긴데 할 수 있게 된 것을 적을 칸이 한 칸도 없다면 — 그건 어쩌면 그 사람의 부족이 아니라, 그 양식의 부족일지도 모릅니다.
같은 시선이 닿는 자리들
이 시선이 닿는 곳은 이력서만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돌보느라 집에 머문 몇 해는 누구보다 분주한 노동이었는데, 정작 경력란에는 ‘없음’으로 비워집니다. 그 시간을 깎아내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저 그 칸이, 돌봄을 일로 적는 법을 모를 뿐이죠.
학교 생활기록부도 그렇습니다. 숫자로 옮겨지는 것들은 줄줄이 적히는데, 한 아이가 무엇이 될 수 있는 사람인지, 어떤 결을 지녔는지는 적을 자리가 마땅치 않습니다. 복지 신청서 앞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내가 무엇을 못 하는가’를 먼저 증명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한 가지 시선으로 보기 시작하면, 사람을 ‘펼칠 수 있는 힘’으로 맞아 주기보다 ‘빠져 있는 것’으로 먼저 읽는 자리들이 하루 곳곳에서 눈에 들어옵니다. 누군가 작아지는 건 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자란 것을 적을 칸이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일 때가 많더라고요.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마사 누스바움의 『역량의 창조』(Creating Capabilities, 2011)는 바로 이 ‘펼칠 자리’를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저자는 한 사회가 잘 사는지를 GDP 같은 숫자가 아니라, 그 안의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곳간이 가득해도 정작 사람들이 자기 힘을 펼칠 자리가 없다면, 그 풍요는 절반만 도착한 셈이라는 거죠.
그래서 이 책은 누구를 탓하라고 부추기지 않습니다. 대신, ‘기회가 열려 있다’는 말과 ‘실제로 펼칠 수 있다’는 말 사이의 거리를 가만히 들여다보게 하지요. 오늘 이력서 앞에서 느낀 그 머쓱함이 정말 내 모자람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펼칠 자리가 빠져 있던 데서 온 것인지를 차분히 따라가 보고 싶을 때 곁에 두기 좋은 책입니다.
저도 얼마 전까진, 비어 있던 시간을 어떻게든 변명하듯 채우려고만 했습니다. 그 칸을 그럴듯하게 메우는 게 제 몫이라고 여겼고요.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르게 보기 시작하니까, 그 시간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었는지부터 다시 보게 되더라고요. 그 안에도 분명, 어딘가 적을 칸만 있었다면 한 줄로 남았을 것들이 있었으니까요.
오늘 하루, 어딘가에 나를 적어 넣는 순간이 있었다면 잠깐 낯설게 다시 봐주세요. 빠져 있던 그 칸이 정말 ‘내가 못한 것’이어서 비었던 걸까요, 아니면 그저 ‘적을 자리가 없던 것’이어서 비었던 걸까요. 그 둘을 한 번 갈라 보는 것만으로도, 익숙하게 넘기던 빈칸 하나가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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