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가득한 식탁에도, 물어봐 주는 칸은 비어 있었습니다
명절이면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친척들이 둥글게 둘러앉은 자리에서, 부모님이 제 성적표를 꺼내 펼쳐 보이시죠. 자랑스러운 웃음과 함께일 때도 있고, 작은 한숨과 함께일 때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 종이 한 장이 식탁 한가운데로 올라오고, 둘러앉은 어른들의 눈길이 잠깐 거기 모입니다. 혹시, 비슷한 자리에 앉아 보신 적 있으신가요?
꼭 성적표만의 일은 아닙니다. 친척 모임에서 “쟤는 이번에 어디 붙었다더라” 하는 말이 오갈 때, 가족 단톡방에 사촌의 합격 소식이 사진과 함께 올라올 때, 모처럼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의 연봉이나 결혼 소식이 화제가 될 때 — 우리는 비슷한 공기 속에 섭니다. 딱히 누가 나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다들 웃고 있는데도,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작아지는 그 느낌이요. 큰일이 아니어서 그냥 넘기게 되고, 그래서 더 자주 반복되는 장면이죠.
사랑과 모욕이 같은 식탁에 앉을 때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부모님은 분명 저를 사랑해서, 자랑하고 싶어서 그러셨을 겁니다. 미워서 그런 게 절대 아니죠. 그러니 여기엔 탓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면, 그 불편함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품위 있는 사회’라는 말로 이 자리를 들여다볼 한 가지 시선을 건넵니다. 그가 말하는 품위 있는 사회란, 그 안의 제도와 관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예요. 여기서 모욕이란 누가 화를 내거나 욕을 퍼붓는 일이 아닙니다. 훨씬 조용한 것이죠. 한 사람을 온전한 인격이 아니라, 펼쳐서 보여주고 견주는 ‘대상’으로 다룰 때 — 바로 그때 모욕은 소리 없이 생겨납니다. 사랑하는 마음과 나란히, 같은 식탁에 앉은 채로요.
그래서 이건 부모님이 유독 무심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더 깊은 곳을 보면, ‘자식 자랑’이라는 익숙한 의례 자체에 비어 있는 칸이 하나 있어요. 정작 그 성적표의 주인이 “이거, 펼쳐 보여도 괜찮을까요?” 하고 물음을 받을 자리가 처음부터 없는 겁니다. 누구를 등록하고, 무엇을 칭찬하고, 어떻게 비교할지는 의례 안에 빼곡한데, ‘당사자의 동의’를 적어 둘 칸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랑이 이렇게나 가득한 자리인데도, 한 사람이 “네, 저는 괜찮아요”라고 답할 기회는 애초에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거죠. 모욕은 누군가의 악의가 아니라, 바로 그 빈칸에서 조용히 새어 나옵니다.
같은 시선이 닿는 자리들
이 시선으로 보기 시작하면, 비슷한 빈칸이 하루 곳곳에 스며 있다는 게 눈에 들어옵니다. 회식 자리에서 신입에게 “분위기 한번 살려 봐” 하며 장기자랑을 시킬 때, 그 사람에게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물어보는 칸은 대개 비어 있습니다. 웃자고 한 일인데도 누군가는 식탁 위에 펼쳐진 기분이 되죠.
학교에서 시험 등수가 복도에 나란히 게시될 때, 병원 진료실에서 문이 열린 채 다른 사람들 앞으로 내 상태가 또렷이 호명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효율을 위해, 혹은 좋은 뜻으로 만들어진 절차라 해도, 거기엔 ‘이 사람을 이렇게 드러내도 될까’를 한 번 물어보는 자리가 빠져 있곤 합니다. 한 사람을 아끼는 마음과, 그 사람을 전시 대상으로 만드는 결은 이렇게 자주 한자리에 섞여 있어요. 그리고 가끔은 제가 그 식탁 위에 올려진 쪽이었고, 가끔은 제가 누군가를 무심코 그 위에 올려 둔 쪽이었다는 것도 함께 보입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시선을 차분히 펼쳐 둔 책이 아비샤이 마갈릿의 『품위 있는 사회』(1996)입니다. 마갈릿은 좋은 사회의 기준을 거창한 정의(正義)의 청사진에서 찾지 않아요. 대신 훨씬 낮고 단단한 곳에서 시작합니다 — 그 사회의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가. 정의로운 사회를 그리기 전에, 먼저 사람을 굴욕에 빠뜨리지 않는 사회부터 묻자는 겁니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구를 탓하라고 부추기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사랑’이나 ‘좋은 뜻’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 쉽게 지나치는 것 — 한 사람을 펼쳐 보이고 견주는 자리에 어떤 결이 숨어 있는지를 가만히 짚어 줍니다. 오늘 그 식탁에서 느낀 묘한 불편함이 사실은 어디서 온 것이었는지, 그 까닭을 천천히 따라가 보고 싶을 때 곁에 두기 좋은 책입니다.
저도 어제까진, 그 명절의 자리를 그냥 ‘사랑 표현’으로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님 마음을 의심해 본 적도 없고요.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사랑과 모욕이 같은 식탁에 나란히 앉아 있을 수도 있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둘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를 한번 낯설게 돌아봐 주세요.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으로 했던 말이나 행동 하나에, 정작 그 사람에게 “이래도 괜찮을까요?” 하고 물어봐 주는 칸이 있었는지를요. 어쩌면 그 작은 한 칸을 비워 두지 않는 일이, 사랑을 모욕으로 흘려보내지 않는 가장 조용한 방법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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