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은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 다만, 조용히 할 자리가 비어 있었을 뿐
장애인 주차구역에 차를 대고 내리는데, 단속하시는 분이 다가옵니다. 자격을 확인해야 한다며 묻기 시작하는데, 마침 그 자리는 사람들이 줄지어 지나는 통로 한복판입니다. 어디가, 어떻게 불편하신 거냐고. 그 물음에 줄 서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제게로 옵니다. 사실 별다른 사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카드를 보여 드리고, 몇 마디를 보태고, 확인이 끝나면 가던 길을 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돌아서는 걸음이 조금 작아져 있습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여러 사람 앞에서 제 몸을 한 번 해명하고 나온 기분이 드는 거죠.
혹시 비슷한 순간을 지나오신 적 있으신가요. 꼭 주차장만의 일은 아닙니다. 공항 보안검색대에서 몸에 지닌 의료 기기를 줄 선 사람들 앞에서 설명해야 할 때, 관공서 창구에서 내 사정을 옆 사람도 다 듣게 소리 내어 확인받을 때, 병원 접수대에서 어디가 아파서 왔는지를 대기 줄 앞에서 또박또박 말해야 할 때. 누가 저를 나무란 것도, 거친 말이 오간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자리를 지나온 사람만 어쩐지 어깨가 한 뼘 내려갑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먼저 분명히 해 둘 게 있습니다. 자격을 확인하는 일 자체는 조금도 잘못이 아닙니다. 꼭 필요한 사람이 그 자리를 쓰도록 살피는 건 오히려 마땅한 일이죠. 그러니 제가 느낀 그 작아짐은, 확인했다는 사실에서 온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같은 확인인데, 누구는 선 채로 누구는 작아진 채로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존중'이라는 말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입니다. 그가 말하는 존중은 조금 뜻밖이에요.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칭찬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 사람을 돕거나 확인할 때조차 그를 작아지게 하지 않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같은 도움도, 같은 확인도, 사람을 선 채로 둘 수 있고 어느새 무릎 꿇린 자세로 만들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둘을 가르는 건, 세넷이 보기에 돕는 사람의 마음씨가 얼마나 따뜻한가가 아닙니다. 애초에 그 일을 '어디서, 누구 듣는 데서' 하도록 설계해 두었느냐입니다.
다시 그 주차장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단속하시던 분이 유난히 모진 사람이어서 제가 작아진 게 아닙니다. 그분은 정해진 대로 성실히 확인했을 뿐일 거예요. 정작 비어 있던 건 따로 있습니다. '남들 안 듣는 데서 조용히 확인할 칸'이 처음부터 마련돼 있지 않았던 거죠. 한 발만 비켜선 자리, 한마디만 낮춘 목소리, 카드 한 장으로 끝낼 수 있는 절차가 거기 있었다면, 같은 확인도 저를 선 채로 둘 수 있었을 겁니다. 모욕은 대개 누군가의 악의에서 터져 나오는 게 아니라, 바로 그 비어 있는 칸에서 조용히 새어 나옵니다.
같은 시선이 닿는 자리들
이 시선을 들고 하루를 둘러보면, 같은 빈칸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직장에서 누군가의 서류 미비를 회의 자리에서 모두가 듣게 짚어 바로잡을 때, 일은 정정되지만 그 사람은 모두 앞에서 한 번 더 작아집니다. 병원 접수대에서 보호자 없이 온 환자에게 큰 소리로 사정을 묻는 순간에도, 학교에서 지원 대상 아이만 따로 불러 세우는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확인은 분명히 이루어지는데, 그 확인을 겪는 사람을 부끄럽지 않게 지켜 주는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장면은 매번 다른데 빠져 있는 것은 늘 같습니다. 일을 처리하는 칸은 빈틈없이 마련돼 있는데, 그 일을 겪는 한 사람을 선 채로 지켜 주는 칸은 어디에도 없는 것. 누군가를 미워해서 생긴 빈칸이 아니라, 그 자리의 설계에 처음부터 그 칸이 없어서 생긴 빈칸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저 사람 참 무뚝뚝하네' 하고 넘겼던 많은 순간이, 실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자리의 문제였는지도 모릅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시선을 한 권으로 차분히 펼쳐 둔 책이 리처드 세넷의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Respect in a World of Inequality)》(2003)입니다. 세넷은 불평등이 쉽게 사라지지 않더라도,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고 존중하며 함께 사는 일은 그것과 별개로 따로 배우고 설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존중은 마음만 먹으면 저절로 우러나는 감정이 아니라, 손에 익혀야 하는 기술에 가깝다는 거죠.
그는 누구를 탓하라고 부추기지 않습니다. 다만 도움과 확인이 어떻게 한 사람을 세우기도 하고 깎기도 하는지를, 자신이 자란 가난한 동네의 기억까지 끌어와 천천히 짚어 줍니다. 오늘처럼 '확인'과 '모욕'이 한 끗 차이로 갈리는 장면을, 누군가의 무례가 아니라 제도와 태도의 문제로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분께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책이에요.
저도 어제까지는, 그런 장면을 보면 '확인이야 해야지 뭐' 하고 별 생각 없이 지나쳤습니다. 확인이 필요하다는 사실 앞에서, 그 확인이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까지는 따져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한번 낯설게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고요. 사람을 작아지게 한 건 확인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확인이 하필 모두가 듣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도록 짜여 있었다는 점이었다는 걸요.
그러니 오늘 하루, 누군가를 확인하거나 도와주는 장면 하나를 잠깐 낯설게 다시 떠올려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은 그 자리를 선 채로 지나갔을까요, 아니면 조금 작아진 채로 지나갔을까요. 그리고 그 작아짐이 정말 누군가의 무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조용히 할 수 있는 칸'이 거기 비어 있었을 뿐인지를요. 어쩌면 그 빈칸을 알아채는 일이, 우리 쪽에서 그 자리를 한 뼘 다시 세워 두는 가장 작은 첫걸음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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