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은 분명 저에게 왔는데, 정작 저에게는 남지 않았습니다
배달을 마치고 문 앞에 음식을 내려놓고 돌아서는데, 잠시 뒤 휴대폰이 울립니다. 별점 다섯 개에 '친절하셨어요' 한마디. 별것 아닌 그 한 줄에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다음 콜을 받는 손이 조금 가벼워집니다. 혹시, 익숙한 장면 아니신가요?
꼭 배달만의 일은 아닙니다. 카페에서 손님이 '여기 직원분이 참 친절해요' 하고 웃어 줄 때, 콜센터에서 한참을 헤매던 고객이 마지막에 '덕분에 살았어요, 감사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을 때, 마트 계산대에서 짐을 같이 정리해 준 뒤 '고마워요' 소리를 들을 때. 그 순간만큼은,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분명히 가닿았다는 따뜻한 느낌이 차오릅니다. 오늘 하루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렇게 마음이 놓이는 거죠.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손님이 별점과 한마디로 알아본 건, 분명 '오늘 이 음식을 들고 빗속을 뚫고 문 앞까지 온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알아봄은 이상하게도 저에게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잠깐 제 마음을 데우고는, 곧 앱 속 어딘가의 평점과 배지로, 회사의 '고객 만족도'라는 숫자로 스르르 빨려 들어가 버리죠.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사람이 '내가 누구인가'를 혼자 힘으로 정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곁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비춰 주느냐, 그 비춤이 모여 '나'라는 윤곽이 만들어진다는 거예요. 그는 이걸 '인정'이라고 불렀습니다. 누군가 나를 알아봐 준 그 마음이 나에게 되돌아와 머물 때, 비로소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감각이 또렷해진다는 거죠. 반대로 그 비춤이 나를 비껴가 버리면, 아무리 잘해도 어쩐지 내가 흐릿해집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짚고 싶어요. 그 칭찬이 저에게 남지 않는 건, 누가 야박하거나 욕심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손님도, 회사도 누구 하나 인색하지 않았어요. 다만 이 시스템 안에는 애초에 그 알아봄이 '한 사람'에게 가서 닿아 머물 칸 자체가 없습니다. 평점이 쌓일 칸, 회사 평판이 올라갈 칸은 정교하게 마련돼 있는데, 정작 알아봄을 받은 그 사람의 이름이 새겨질 자리는 비어 있는 거죠. 그래서 매일같이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동시에 그 말이 어디에도 나로서 남지 않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같은 시선이 닿는 자리들
이 시선을 들고 하루를 둘러보면, 같은 빈칸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회사에서 밤새워 다듬은 기획이 정작 부서의 성과로, 윗사람의 보고로 올라갈 때. 콜센터 상담원의 다정함이 '우리 브랜드는 친절하다'는 회사의 평판으로만 적립될 때. 병원에서 환자가 진심으로 고마워한 그 손길이 간호사 개인이 아니라 '그 병원 서비스가 좋다'는 후기로만 남을 때.
장면은 매번 다른데, 빠져 있는 것은 늘 같습니다. 누군가의 수고와 그 수고를 알아봐 준 마음은 분명히 오갔는데, 그 둘이 만나 '이 사람이 했다'고 새겨질 자리만 비어 있는 거예요. 집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너무 당연해진 나머지, 고맙다는 말조차 그 사람에게 닿지 못하고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한마디로 흩어져 버리곤 하니까요. 미워서 생긴 빈칸이 아니라, 그 자리의 짜임에 처음부터 그 칸이 없어서 생긴 빈칸입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시선을 한 권으로 차분히 펼쳐 둔 책이 찰스 테일러의 《불안한 현대 사회(The Malaise of Modernity)》(1991)입니다. 테일러는 진정한 '나다움'이란 골방에 들어가 혼자 길어 올리는 게 아니라, 곁의 사람들과 주고받는 관계와 인정 속에서 비로소 만들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인정이 오갈 통로가 막히거나 엉뚱한 데로 새어 버리면, 사람은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서 조금씩 멀어진다는 거죠.
오늘처럼 내 수고가 나에게 돌아오지 않고 어딘가로 흡수되어 버릴 때, 분명히 칭찬을 받았는데도 왜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지 — 그 까닭을 이 책의 시선으로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누구를 탓하라는 책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조용히 잃고 있는지를 알아채게 해 주는 책이에요.
저도 어제까지는, 별점 잘 받으면 그냥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 그 칭찬이 정작 어디로 흘러갔는지까지는 들여다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한번 낯설게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고요. 저를 데운 그 따뜻함이 정작 저에게는 한 줌도 남지 않고, 어딘가의 숫자로 옮겨 가 있었다는 걸요.
그러니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순간이 있거든 그 한 장면을 잠깐 낯설게 멈춰 세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마음은 정말 '나'라는 한 사람에게 가닿아 머물렀을까요, 아니면 나를 스쳐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 버렸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무심코 주고받는 그 많은 고마움들은, 과연 제대로 된 주인을 찾아가고 있는 걸까요. 그 빈칸을 알아채는 일이, 어쩌면 흐려진 '나'를 다시 또렷하게 세우는 가장 작은 첫걸음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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