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걸린 명단 — 거기 적힌 게, 정말 숫자뿐이었을까요
엘리베이터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습니다. '관리비 미납 세대'라는 굵은 제목 아래로, 호수들이 줄을 맞춰 적혀 있고요. 사람들은 그 앞에서 잠깐 멈춰 번호를 훑어보고, 문이 열리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립니다. 종이는 그저 정보일 뿐이고, 누구를 다치게 하려고 붙인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만약 그 명단에서 익숙한 번호를 발견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이 엘리베이터는 그날부터 조금 다른 공간이 됩니다.
혹시 비슷한 장면을 지나오신 적 있으신가요. 꼭 아파트만의 일은 아닙니다. 작은 식당 계산대 옆에 외상 장부 대신 적어 둔 이름들, 아이가 받아 온 알림장에 준비물 안 챙긴 학생 번호가 나란히 적혀 있던 칸, 단체 대화방에 '아직 회비 안 내신 분'이라며 올라온 명단. 누가 큰소리를 낸 것도, 모진 말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목록에 자기 이름이 있는 사람만, 어쩐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집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관리비를 제때 걷는 일은 마땅하고, 그 명단을 붙인 분도 맡은 일을 성실히 했을 뿐입니다. 누구도 누군가에게 망신을 주려던 게 아니에요. 그러니 그 종이 앞에서 누군가가 작아졌다면, 그건 일을 처리했다는 사실에서 온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같은 일을, 모두가 보는 벽에 거는 것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존중'이라는 말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입니다. 그가 말하는 존중은 좀 뜻밖이에요. 누군가를 칭찬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 아니라, 형편이 서로 다른 사회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도 끝까지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돈이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말이죠. 그리고 세넷이 보기에, 같은 일도 사람을 선 채로 둘 수 있고 어느새 작아지게 만들 수도 있는데, 그 둘을 가르는 건 일을 하는 사람의 마음씨가 아닙니다. 애초에 그 일을 '어디서, 누구 보는 데서' 하도록 짜 두었느냐입니다.
그 종이를 다시 들여다보면, 거기엔 '납부'와 '미납'을 적는 칸은 빈틈없이 마련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집이 지금 좀 어렵구나' 하고 조용히 물어볼 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정을 따로 전할 통로가 있었다면, 같은 일도 벽에 걸린 명단이 아니라 봉투에 담긴 한 통의 안내였을 거예요. 공개된 명단은 사실 정보를 전하려는 종이가 아닙니다. 부끄러움을 빌려 빚을 갚게 하려는 장치에 가깝죠. 시스템이 효율만 남기고 체면을 둘 자리를 지워 버리면, 한 사람의 곤란은 그렇게 모두가 오르내리는 벽에 걸립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겼던 그 명단은, 누군가의 못된 마음이 만든 게 아니었습니다. 그 일을 처리하는 방식 안에, 사람을 가려 줄 칸이 처음부터 빠져 있었을 뿐이에요.
같은 시선이 닿는 자리들
이 시선을 들고 하루를 둘러보면, 같은 빈칸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직장에서 실적이 모자란 사람의 이름을 모두가 보는 게시판에 순위로 붙여 둘 때, 일은 독려되지만 그 사람은 매일 출근길마다 한 번 더 작아집니다. 학교에서 급식비가 밀린 아이만 교실 앞으로 따로 불러 세우는 자리도, 관공서 창구에서 지원 대상이라는 사실을 옆 사람도 다 듣게 확인받는 순간도 마찬가지예요.
장면은 매번 다른데 빠져 있는 것은 늘 같습니다. 일을 처리하는 칸은 꼼꼼히 있는데, 그 일을 겪는 한 사람을 부끄럽지 않게 가려 줄 칸은 어디에도 없는 것. 누군가를 미워해서 생긴 빈칸이 아니라, 그 자리의 설계에 처음부터 그 칸이 없어서 생긴 빈칸입니다. 그래서 모욕은 대개 누군가의 악의에서 터져 나오는 게 아니라, 바로 그 비어 있는 칸에서 조용히 새어 나옵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시선을 한 권으로 차분히 펼쳐 둔 책이 리처드 세넷의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Respect in a World of Inequality)》(2003)입니다. 세넷은 잘나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 어떻게 서로의 자존을 지켜 줄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불평등이 쉽게 사라지지 않더라도,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고 존중하며 함께 사는 일은 그것과 별개로 따로 배우고 설계해야 한다는 거죠. 존중은 마음만 먹으면 저절로 우러나는 감정이 아니라, 손에 익혀야 하는 기술에 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누구를 탓하라고 부추기지 않습니다. 다만 누군가를 돕거나 그 사정을 다루는 방식이, 도리어 그 사람을 깎아내릴 수 있다는 걸 자신이 자란 가난한 동네의 기억까지 끌어와 천천히 짚어 줍니다. 오늘처럼 누군가의 어려운 형편이 본의 아니게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자리를, 누군가의 무례가 아니라 제도와 태도의 문제로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분께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책이에요.
저도 어제까지는, 그런 명단을 보면 '누가 또 밀렸나 보다' 하고 별 생각 없이 지나쳤습니다. 거기 적힌 게 그저 호수와 숫자라고만 여겼지, 그 한 줄이 누군가에겐 매일 오르내려야 하는 벽이라는 데까지는 미처 닿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한번 낯설게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그 종이가 전하던 건 미납 액수만이 아니었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러니 오늘 하루, 무심코 지나친 어떤 명단이나 게시물, 단체 대화방의 공지 하나를 잠깐 다시 떠올려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거기에는 일을 처리하는 칸은 있었는데, 그 일을 겪는 누군가의 사정을 조용히 가려 줄 자리는 빠져 있지 않았는지요. 어쩌면 그 빈칸을 알아채는 일이, 우리 쪽에서 그 자리를 한 뼘 다시 세워 두는 가장 작은 첫걸음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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