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 거나 잘하라’던 자리 — 거기엔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적을 칸이 없었던 걸까요

새 일을 받아 드는 아침을 한번 떠올려 봅니다. 자리에 앉으면 해야 할 일의 목록이 먼저 도착합니다. 언제까지, 어떤 형식으로, 누구에게 넘길지. 빈틈없이 적혀 있죠. 그런데 그 목록 어디에도 ‘당신은 무엇을 해 보고 싶으냐’를 묻는 줄은 없습니다. 대신 자주 돌아오는 말은 따로 있죠. ‘시키는 거나 잘하면 된다.’ 직접 이 말을 들어 보셨든, 옆자리 동료가 듣는 걸 가만히 지켜보셨든 — 혹시 이 장면, 어딘가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꼭 거창한 순간이 아니어도 그렇습니다. 한 해를 정리하는 면담 자리에서, 무엇을 해냈는지는 줄줄이 확인하면서도 ‘앞으로 무엇을 해 보고 싶으냐’는 끝내 물어보지 않을 때. 회의에서 의견을 보태려다 ‘그건 네가 정할 게 아니야’ 한마디에 도로 입을 다물게 될 때. 우리는 비슷한 장면을 마주합니다. 한 사람이 잠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펼치는 사람이 아니라, 정해진 일을 채워 넣는 손이 되어 그 자리에 서 있게 되는 장면이요.

‘시키는 일’을 채우는 자리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펴는 자리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시키는 걸 잘한다’는 건, 이미 정해진 일을 빈틈없이 채워 넣는 자리입니다. 그 자체로 나쁜 일은 아니죠. 다만 그 안에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가 들어설 칸이 따로 없습니다. 할 일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고, 사람은 그 정해진 틀에 자기를 맞춰 넣을 뿐이니까요.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이 자리를 들여다볼 한 가지 시선을 건넵니다. 그는 사람의 존엄을, 어떤 능력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그 능력을 실제로 펼칠 자유와 여건이 열려 있느냐로 봤습니다. 이걸 역량 접근법이라고 부르죠. 그러니까 중요한 건 ‘이 사람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만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꺼내 펼칠 틈이 그 자리에 있느냐’라는 겁니다. 아무리 많은 걸 품고 있어도 펼칠 틈이 없다면, 그건 닫힌 채로 남아 버리니까요.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 상사가 유독 못된 사람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일을 실제로 굴리는 건 정해진 절차와 일정인데, 그 표 어디에도 ‘이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 적을 칸이 없습니다. 적을 칸이 없으니, 사람은 결국 ‘시킨 일을 해낸 손’으로만 남습니다. 일을 나누는 게 잘못이 아니라, 사람을 채워 넣는 칸만 있고 사람이 자라날 칸은 비어 있는 그 구조가 조용히 한 사람을 좁혀 두는 거죠. 일은 시켜서 되게 할 수 있어도, 사람이 자라는 건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같은 시선이 닿는 자리들

이 시선으로 보기 시작하면, 비슷한 자리가 하루 곳곳에 스며 있다는 게 눈에 들어옵니다. 집에서 아이에게 ‘쓸데없는 생각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라고 말할 때가 그렇습니다. 그 말 안에는 아이가 스스로 무엇을 해 보고 싶은지 꺼내 볼 틈이 없죠. 정해진 길을 잘 따라오는 일만 남고, 자기 역량을 펴 볼 여지는 슬그머니 닫힙니다.

학교에서 정해진 답만 맞히면 되는 자리도, 병원이나 돌봄의 자리에서 한 사람이 ‘협조만 잘하면 되는 대상’으로만 다뤄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를 물어보기 전에, 정해진 틀에 잘 맞춰 들어오는지부터 살피는 자리들이죠.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저 역시 누군가에게 일을 건네며 ‘그냥 이대로만 해 주세요’ 하고, 그 사람이 무엇을 더 해 보고 싶었을지는 끝내 물어보지 않은 날이 적지 않았습니다. 펼칠 틈을 닫는 쪽도, 닫힌 채 서 있는 쪽도 결국 우리 모두의 자리였던 셈입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시선을 한 권으로 차분히 펼쳐 둔 책이 마사 누스바움의 『역량의 창조』(2011)입니다. 저자는 한 사람의 삶이 좋은지를 그 사람이 ‘무엇을 가졌는가’로 따지는 데서 한 걸음 옮겨 갑니다. 정작 물어야 할 것은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 — 그러니까 역량이라는 거죠.

누스바움은 누구를 탓하라고 부추기지 않습니다. 다만 ‘시키는 일을 해내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걸 펼치는 것’이 결코 같은 일이 아니라는 걸, 역량이라는 말로 조용히 짚어 줍니다.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펼칠 자유가 닫혀 있다면 그 삶은 좁아진다는 것을, 우리가 익숙하게 ‘시키는 일’을 채우던 그 자리에서 다시 보게 해 주는 책입니다.

저도 어제까지는, ‘시키는 거 잘하면 되지’ 하고 그냥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정작 그 자리에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빠져 있었다는 게 그제야 보이더라고요. 시킨 일을 잘 해내는 것과, 제 안의 무언가를 꺼내 펼치는 것은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 익숙하게 ‘시키는 일’을 하던 한 장면을 잠깐 낯설게 다시 봐주세요. 그 자리에 제가 펼쳐 보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는지, 그걸 꺼내 볼 틈은 한 뼘이라도 열려 있었는지를요. 어쩌면 그 빈칸을 알아채는 일이, 나와 곁에 있는 사람이 조금 더 자라날 틈을 만드는 가장 작은 첫걸음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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