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평균 깎아먹는 애’ — 한 사람을, 숫자 한 칸으로 줄일 수 있을까요

시험지를 돌려받던 교실을 한번 떠올려 봅니다. 점수가 적힌 종이가 한 장씩 책상 위에 놓이고, 누군가는 슬쩍 손바닥으로 가립니다. 그때 교탁에서 이런 말이 들려옵니다. ‘너는 반 평균 깎아먹는 애야.’ 직접 그 말을 들어 보셨든, 아니면 옆자리 친구가 그 말을 듣는 걸 가만히 지켜보셨든 — 혹시 이 장면, 어딘가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꼭 교실만의 일은 아닙니다. 성적표를 받아 든 저녁 식탁에서 ‘이 점수로 뭐가 되려고 그러니’라는 말이 떨어질 때, 형제끼리 ‘누구는 몇 등인데 너는’ 하고 나란히 세워질 때, 우리는 비슷한 장면을 마주합니다. 한 사람이 잠깐, 자기 자신이 아니라 어떤 숫자가 되어 그 자리에 서 있게 되는 장면이요. 그 순간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요.

‘부품’으로 불릴 때와 ‘사람’으로 불릴 때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반 평균 깎아먹는 애’라는 말 속에서, 한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 거기 서 있지 못합니다. ‘반 평균’이라는 숫자에 더해지고 빠지는 한 칸으로만 남아 있죠. 그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침에 어떤 마음으로 교문을 들어섰는지는 그 한마디 안에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 자리를 들여다볼 한 가지 시선을 건넵니다. 그는 사람을 한낱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누구든 어떤 숫자나 결과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목적 — 그러니까 그 자체로 온전한 한 사람으로 대해져야 한다고요. 쓸모를 따지는 시선과, 사람을 사람으로 마주하는 시선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겁니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 선생님이 유독 못된 사람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교실을 실제로 움직이는 건 평균이고 등수인데, 그 표 어디에도 ‘이 아이가 어떤 사람인가’를 적어 넣을 칸이 없습니다. 적을 칸이 없으니, 사람은 결국 숫자로 환산되어 남습니다. 성적을 적는 일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 성적밖에 적을 칸이 없는 그 표가 조용히 사람을 지우는 거죠. 한 사람을 부품으로 부르게 만드는 건 누군가의 악의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칸이 비어 있는 그 구조였던 셈입니다.

같은 시선이 닿는 자리들

이 시선으로 보기 시작하면, 비슷한 환산이 하루 곳곳에 스며 있다는 게 눈에 들어옵니다. 직장에서 누군가를 떠올릴 때 ‘이 사람은 우리 실적에 얼마나 보탬이 되나’부터 헤아리게 되는 순간이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어느새 한 사람이 아니라, 성과표에 더해지는 한 줄이 되어 있죠.

소개나 맞선 자리에서 ‘어느 회사, 연봉은 얼마’가 사람보다 먼저 도착할 때, 병원에서 한 사람이 이름 대신 ‘3번 환자’나 ‘오늘 그 케이스’로 불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한 사람을 그 자체로 마주하기 전에, 무엇에 쓸모 있는지부터 헤아려 칸 하나에 넣어 버리는 자리들이죠.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저 역시 누군가를 ‘일 잘하는 사람’ ‘좀 느린 사람’처럼 쓸모로만 떠올리며 지낸 날이 적지 않았습니다. 환산하는 쪽도, 환산당하는 쪽도 결국 우리 모두의 자리였던 셈입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시선을 사회 전체로 넓혀 펼쳐 둔 책이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2020)입니다. 저자는 성공을 ‘내 능력으로 얻어 낸 당연한 몫’으로 여기는 능력주의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언뜻 공정해 보이는 그 사고방식이, 실은 사람의 가치를 성취와 등수로 환산해 버리는 데서 출발한다고 짚죠.

샌델은 누구를 탓하라고 부추기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한 사람을 ‘얼마나 해냈는가’로 줄여 부르는 데 너무 익숙해진 지점을 차분히 비춰 줍니다. 성적 한 줄로 한 사람을 가늠하던 그 교실이 사실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었음을, ‘사람의 가치를 성취로 환산하는 세상’이라는 더 넓은 시선에서 다시 보게 해 주는 책입니다.

저도 어제까지는, 누군가를 떠올릴 때 그 사람이 무엇에 쓸모 있는지부터 헤아리고 있다는 걸 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그 사람이 숫자 뒤로 슬그머니 사라지던 순간들이 그제야 보이더라고요. 쓸모를 헤아리는 일과, 사람을 사람으로 마주하는 일은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 누군가를 무심코 떠올렸던 한 장면을 잠깐 낯설게 다시 봐주세요. 그때 그 사람은 ‘무엇에 쓸모 있는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한 사람이었는지를요. 어쩌면 그 사람을 숫자 한 칸에서 꺼내 다시 사람으로 마주하는 일이, 우리가 서로의 존엄을 지키는 가장 작은 첫걸음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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