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돈이 안 돼' 한마디에 접힌 것 — 닫힌 건 꿈이었을까, 그 꿈이 설 자리였을까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생깁니다. 한참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어느 날 큰맘 먹고 조심스레 꺼내 봅니다. 그런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건 돈이 안 돼' 한마디가 먼저 돌아옵니다. 거기서 더 보탤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접힙니다. 누가 화를 낸 것도 아니고, 비웃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짧은 한 문장에 문이 닫혔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 그 꿈을 다시 입에 올리기가 어려워집니다.
혹시 비슷한 장면을 지나오신 적 있으신가요. 꼭 어린 시절 진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회사에서 해 보고 싶은 일을 말했더니 '그게 매출이 나오겠어?'로 정리될 때, 오랜 취미를 좀 더 깊이 해 보고 싶다고 했다가 '그거 해서 뭐 하게'라는 말에 멈출 때. 말한 사람도 딱히 악의가 있던 건 아닙니다. 그런데도 어쩐지 그 한마디를 지나오고 나면, 마음 한구석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슬그머니 내려놓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먼저 짚어 둘 게 있습니다. '돈이 안 된다'고 말한 사람은, 대개 그 사람을 깎아내리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걱정에서 나온 말일 때가 많죠. 그러니 무언가가 접혔다면, 그건 누군가의 못된 마음 때문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미래를 바라보는 길이, 어느새 '돈이 되느냐' 하나로만 좁아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이 아니라, 살아볼 수 있는 길
인도의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평생 한 가지 질문을 붙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잘 산다는 건 대체 무엇으로 가늠되는가. 흔히 우리는 통장 잔고나 연봉 같은, 가진 것의 크기로 답합니다. 그런데 센의 답은 조금 다릅니다. 진짜 중요한 건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아볼 수 있느냐'라는 거예요. 같은 돈을 쥐고 있어도, 어떤 사람에게는 열린 길이 여럿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단 하나뿐일 수 있습니다. 센은 바로 그 '살아볼 수 있는 길의 폭'을 자유라고 불렀습니다.
이 시선으로 그 장면을 다시 보면, 닫힌 것의 정체가 달라집니다. 그 꿈이 모자랐던 게 아닙니다. 그 꿈이 들어설 칸이 처음부터 마련돼 있지 않았던 거예요. 사람이 살아볼 수 있는 길은 본래 여럿인데, 그중 '돈이 되는 길' 하나만 진짜로 쳐주는 구조 안에서는, 나머지 길들은 말해 보기도 전에 없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 접힌 건 그 사람의 가능성이 아니라, 그 가능성을 알아보고 받아 줄 자리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건 누구 한 사람의 잘못으로 돌리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돈이 안 돼'라고 말한 사람도, 사실은 똑같이 좁은 길 위에서 자란 사람이니까요. 그도 어릴 적 어딘가에서 같은 한마디에 무언가를 접었을지 모릅니다. 미워할 사람을 찾는 대신, 한 사람의 길을 자꾸 하나로만 좁히는 그 구조를 바라보는 편이, 어쩌면 더 정직한 시선일 겁니다.
같은 자리가 곳곳에 있습니다
이 시선을 들고 하루를 둘러보면, 같은 빈자리가 여기저기서 드러납니다. 가정에서 아이가 꺼낸 진로 이야기가 '그건 안정적이지 않잖아' 한마디로 정리될 때, 학교에서 성적이 되는 길 하나로만 미래를 그리도록 권할 때. 그 길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다른 길들이 들어설 칸이 거기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병원 침상에 오래 누운 분이 '이제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할 때도, 회사에서 한 사람을 정해진 한 가지 쓸모로만 부를 때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마다 펼쳐 보일 수 있는 길은 여럿인데, 그걸 단 하나의 쓸모로만 바라보는 자리에서는 나머지 길들이 통째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 장면은 매번 다른데, 빠져 있는 것은 늘 같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볼 수 있는 길의 폭을, 있는 그대로 알아봐 주는 칸이 비어 있다는 것.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시선을 한 권으로 차분히 펼쳐 둔 책이 아마르티아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Development as Freedom)》(1999)입니다. 센은 한 사회의 발전을 국민소득이 얼마나 늘었느냐로만 재는 오랜 습관에 질문을 던집니다. 진짜 발전이란 숫자가 커지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볼 수 있는 삶의 폭이 넓어지는 일이라고 말하지요.
그는 누구를 탓하라고 부추기지 않습니다. 다만 풍요로워 보이는 사회에서도 사람들의 선택지가 어떻게 조용히 좁아지는지를, 여러 나라의 이야기를 끌어와 천천히 짚어 줍니다. 한 사람의 미래를 '돈이 되느냐'로만 좁히는 자리에서, 정작 우리가 넓혀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보고 싶은 분께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책이에요.
저도 어제까지는, 누가 무언가 해 보고 싶다고 하면 '그게 돈이 되겠어?'부터 떠올린 적이 많았습니다. 걱정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그 말로 누군가의 길을 저도 모르게 하나로 좁혀 둔 적이 적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한번 낯설게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고요. 제가 닫았던 건 그 사람의 막연한 꿈이 아니라, 그 꿈이 잠시 머물러 볼 자리였다는 걸요.
그러니 오늘 하루, 누군가 조심스레 꺼낸 '하고 싶은 일' 하나를 잠깐 다른 눈으로 들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돈이 되느냐' 말고, '이 사람이 살아보고 싶은 길이 여기 하나 있구나' 하는 눈으로요.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한번 물어봐 주세요. 나는 지금, 살아볼 수 있는 여러 길 가운데 몇 개의 길 위에 서 있는지. 혹시 누군가의 한마디에, 혹은 나 자신의 한마디에 조용히 접어 둔 길이 있지는 않은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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