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번호요’ 그 한마디 — 그때 사라진 건, 정말 제 이름뿐이었을까요
주민센터나 은행, 병원 수납 창구에 앉아 차례를 기다려 본 적,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손에는 뽑아 든 번호표 한 장, 머리 위 전광판에는 숫자가 한 칸씩 올라가고, 마음은 어느새 그 숫자에 맞춰 조용히 뜁니다. 드디어 제 차례. 그런데 그 순간 건너오는 건 제 이름이 아니라 “다음 번호요”, 혹은 “47번 고객님” 한마디입니다. 잠깐 멈칫하지만, 곧 자리에서 일어나 창구로 향합니다. 혹시, 익숙한 장면 아니신가요.
꼭 창구 앞만의 일도 아닙니다.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한참을 기다린 끝에 “고객님, 상담원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하는 음성을 들을 때, 큰 병원 진료실에서 “다음 환자분 들어오세요” 소리에 맞춰 일어설 때, 우리는 닮은 자리를 지납니다. 이름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 자리에서는 잠깐 ‘처리되어야 할 한 건’으로 줄을 서게 되는 장면이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반대편 창구에 앉아 “다음 분” 하고 손짓을 보낸 쪽이 저였던 날도 분명 있었습니다.
‘너’로 만나느냐, ‘그것’으로 넘기느냐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가만히 둘로 나눠 봅니다. 하나는 마주 서서 ‘너’로 만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처리해야 할 ‘그것’으로 다루는 방식입니다. 말은 어렵게 들리지만, 가만히 보면 우리 누구나 아는 차이예요. 앞에 선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마주하느냐, 아니면 빨리 넘겨야 할 한 건의 일감으로 보느냐. 같은 사람을 두고도 그 둘은 완전히 다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번호로 불리는 그 짧은 순간, 저는 마주해야 할 ‘너’가 아니라 빠르게 지나가야 할 ‘한 건’이 됩니다. 이름이 있는데도 이름이 필요 없어지는 자리예요. 그런데 부버의 시선이 매서운 건 여기서부터입니다. 이 일이 창구 직원이 차갑거나 무례해서 벌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분도 하루에 수십, 수백 명을 마주합니다. 정말 비어 있는 건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그 창구의 ‘설계’예요. 그 구조 어디에도 ‘한 사람을 잠깐 만나는 칸’이 처음부터 그려져 있지 않았던 겁니다.
번호로 줄을 세우는 방식은 분명 빠르고 공정해 보입니다.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불리고, 누구도 새치기당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 매끄러움의 조건이 ‘아무도 서로를 사람으로 마주하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는 한 번쯤 멈춰 물어볼 만합니다. 이건 정말 질서일까요, 아니면 사람이 슬그머니 사라진 자리에 효율이라는 이름이 대신 들어선 걸까요. 줄은 짧아졌는데, 정작 거기서 만나야 할 한 사람만 보이지 않게 된 건 아닐까요.
같은 시선이 닿는 자리들
이 시선으로 보기 시작하면, 닮은 자리가 하루 곳곳에 스며 있다는 게 눈에 들어옵니다. 회사에서 누군가를 두고 “그 자리 빈 거 누구로 채우지” 하고 말할 때, 그 한 사람은 어느새 메워야 할 ‘한 칸’으로 옮겨 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3번, 일어나서 읽어 봐” 하는 호명 속에서, 한 아이는 이름이 아니라 출석부의 한 줄로 불립니다. 식구끼리 밥상에 둘러앉아도 각자 화면만 들여다보느라, 바로 앞의 가족을 ‘오늘 무슨 일이 있었을 너’가 아니라 그저 익숙한 배경처럼 흘려보내는 저녁도 있고요.
한 기준이 이렇게 곳곳에 번져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처리’하면서도 그걸 알아채지 못할 때가 많아요. 빨리 끝내는 게 친절이라고 여기기도 하고요. 저 역시 바쁘다는 이유로, 앞에 선 사람의 이름은커녕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네, 다음 분요” 하고 손을 내저은 적이 적지 않습니다. 일을 잘 처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거기 마주해야 할 한 사람이 있었다는 건 한참 뒤에야 떠올랐어요.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시선을 한 권으로 차분히 펼쳐 둔 책이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Ich und Du)』(1923)입니다. 부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참된 관계가 열리는 건, 상대를 ‘그것’ — 처리할 대상, 쓸모로 따지는 무엇 — 이 아니라 ‘너’ — 마주 선 한 존재 — 로 만날 때라고 말합니다. ‘그것’의 세계는 편리하고 정돈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마주함이 없습니다. 오직 ‘너’라고 부르며 마주 설 때에만, 비로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언가가 진짜로 오간다는 거예요.
이 책은 누구를 탓하라고 부추기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얼마나 자주, 너무도 자연스럽게 앞사람을 ‘그것’으로 넘기며 살아가는지를 조용히 비춰 줍니다. 번호로 불리던 그 창구의 한순간을, ‘나-그것’이 ‘나-너’를 슬며시 밀어낸 자리로 다시 보고 싶은 분께,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책입니다.
저도 어제까지는, 창구에서 번호로 불려도 그저 빨리 끝나서 다행이다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하루 동안 제가 ‘번호’로 지나간 자리도, 또 제가 누군가를 ‘번호’로 넘긴 자리도 함께 보이더라고요. 사라진 건 제 이름 한 글자가 아니라, 한 사람을 잠깐이라도 마주할 그 자리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 무심코 “다음 분” 하고 넘긴 한 장면을 잠깐 낯설게 다시 봐주세요. 거기, 미처 마주하지 못하고 지나친 한 사람이 있지는 않았는지를요. 어쩌면 이름을 한 번 불러 보는 그 작은 멈춤이, ‘그것’이 되어 가던 누군가를 다시 ‘너’로 되돌리는 가장 조용한 첫걸음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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