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존댓말은, 처음부터 저를 향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손님이 밀려드는 홀에서, 사장님이 계실 때는 다들 저를 향해 깍듯했습니다. “여기 좀 도와주시겠어요?”, “수고 많으세요.” 말끝마다 존댓말이 또렷했고, 그 순간만큼은 저도 한 사람 몫으로 여기 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잠깐 자리를 비우자, 바로 그 같은 사람 입에서 반말이 툭 튀어나오더군요. 몇 초 사이에 말투 하나가 통째로 갈아 끼워진 겁니다. 혹시 이런 순간을, 어딘가에서 한 번쯤 겪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꼭 식당 홀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상사가 지켜볼 때는 상냥하던 목소리가, 문이 닫히는 순간 차갑게 바뀌던 사무실. 손님이 곁에 있을 때와 없을 때, 매장 막내를 부르는 말이 딴판이던 가게. 우리는 같은 사람에게서 두 개의 말투를 번갈아 보는 순간을, 생각보다 자주 마주칩니다.

대개 우리는 여기서 ‘사람이 참 이중적이네’ 하고 생각을 멈춥니다. 기분이 상하고, 조금 무시당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럴 만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장면을, 그 사람을 탓하기 전에 한 걸음만 떨어져서 다시 봐볼게요.

말투가 바뀐 그 몇 초 사이에

존댓말이 반말로 넘어간 그 짧은 사이에, 사실 달라진 건 딱 하나였습니다. 저를 지켜보던 ‘윗사람’이 곁에 있느냐, 없느냐. 제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는데, 오직 보는 눈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대접이 통째로 달라진 겁니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존중이라는 것을, 힘의 차이가 분명히 있는 사이에서도 상대를 낮잡지 않는 태도라고 말합니다. 지위가 위든 아래든, 그 격차와 상관없이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존중의 진짜 모습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내가 상대를 어떻게 대하느냐에서 드러난다고 그는 봅니다. 누가 지켜볼 때만 켜지는 예의는, 사실 그 사람이 아니라 지켜보는 눈을 향한 것이니까요.

그렇게 보면, 조금 전 저에게 쏟아지던 그 존댓말은 처음부터 저를 향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저 너머에 선 사장님을 향해 있었고, 저는 그 예의가 잠깐 스쳐 지나가는 통로였을 뿐이고요. 사장님이 사라지자 그 통로도 함께 닫힌 겁니다. 그 순간 저는 ‘존중받는 사람’이 아니라, ‘보는 눈이 없으니 생략해도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거죠.

그래서 이건 그 사람 한 명의 못된 마음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위아래가 또렷한 자리에서는, 예의가 사람이 아니라 자리를 향하도록 은근히 짜여 있을 때가 많습니다. 힘 있는 사람 앞에서는 켜고, 없으면 꺼도 되는 스위치처럼요. 개인이 유난히 표리부동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켜고 끄는 게 흠이 되지 않는 자리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 자리에는,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세워 두는 칸이 처음부터 마련돼 있지 않았던 거죠.

같은 시선이 닿는 자리들

이 시선으로 보기 시작하면, 켜졌다 꺼졌다 하는 예의가 하루 곳곳에 스며 있다는 게 눈에 들어옵니다. 윗사람이 함께 탄 엘리베이터에서는 정중하다가, 문이 닫히고 둘만 남으면 명령조로 바뀌는 목소리. 평가자가 앉아 있는 회의에서는 후배의 말을 끝까지 듣다가, 자리가 파하면 말을 뚝 자르는 태도가 그렇습니다.

가게 앞에서 손님에게는 허리를 숙이면서 주방의 막내에게는 함부로 말하는 자리, 병원에서 보호자가 지켜볼 때와 아닐 때 말 못 하는 환자를 대하는 손길이 달라지는 순간도 결은 같습니다. 어느 쪽이든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가 아니라, 지금 나를 지켜보는 눈이 있느냐 없느냐가 대접을 정한다는 것. 존중이 사람을 향하지 않고 ‘보는 눈’을 향할 때, 우리는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마다 조용히 한 뼘씩 낮춰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시선을 찬찬히 펼쳐 둔 책이 리처드 세넷의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2003)입니다. 힘과 지위의 차이가 이렇게나 큰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사람을 낮잡지 않고 존중할 수 있는지를 오래 들여다본 책입니다. 저자는 존중이 그저 마음씨 좋은 사람의 미덕이 아니라, 관계와 제도가 사람을 어떻게 세우거나 깎아내리는지의 문제라고 짚습니다.

그가 바라본 것도 누가 더 예의 없는 사람인가가 아니라, 왜 어떤 자리에서는 존중이 그렇게 쉽게 켜지고 꺼지는가였습니다. 오늘처럼 같은 사람 입에서 존댓말과 반말이 몇 초 사이에 갈리는 장면이, 한 사람의 인성 탓인지 아니면 그 자리가 원래 그렇게 짜여 있어서인지를 천천히 따라가 보고 싶을 때 곁에 두기 좋은 책입니다. 책 한 권으로 홀의 말투가 바뀌진 않겠지만, 그 말투를 듣는 귀 하나는 분명 달라집니다.

저도 그날은 그냥 ‘기분 나쁘네’ 하고 넘겼습니다. 반말 한마디에 잠깐 욱했다가, 손님이 또 밀려들면 금세 잊어버리는 그런 하루였고요.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저를 스치고 지나간 그 반말보다 조금 전의 그 존댓말이 더 오래 마음에 남더라고요. 정작 저를 향한 게 아니었던, 그 잠깐의 예의가요.

그러니 오늘 하루, 누군가 저에게 건네는 인사나 예의를 한번 낯설게 다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누군가에게 건네는 예의도요. 그건 정말 그 사람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 뒤에 선 누군가의 눈을 향한 것인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제 말투가 어떻게 바뀌는지, 오늘만큼은 조용히 저 자신을 지켜봐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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