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한 줄이 빠졌을 뿐인데, 왜 마음까지 헐거워질까요
마을 행사 날을 한번 그려봅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와서 천막을 세우고, 접이식 의자를 나르고, 큰 솥에 국을 안칩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 무렵엔 이미 등이 땀으로 젖어 있고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손을 보태고, 다 끝난 저녁에 누군가 결산서 한 장을 돌립니다. 빌린 의자값, 국 재료값, 들어오고 나간 돈이 줄줄이 적혀 있어요. 그런데 아무리 훑어봐도, 그 새벽부터 이 모든 걸 굴린 ‘나’를 적을 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혹시, 어딘가에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꼭 마을 행사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몇 주를 매달려 만든 기획안이 회의에서 다른 사람 이름으로 발표되던 순간. 팀이 상을 받았는데 무대엔 나만 빼고 올라가던 자리. 명절 내내 부엌을 지켰는데, ‘수고했다’는 말은 정작 상 앞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로 가던 저녁. 하나같이, 일은 분명 내 손을 거쳐 갔는데 그 흔적이 어디에도 남지 않는 장면들이에요. 서운하다고 말하기엔 스스로도 ‘내가 유난인가’ 싶어 삼키게 되는, 그런 장면들.
빠진 건 이름 한 줄이었을까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결산서를 다시 들여다보면 이상한 대칭이 보입니다. 빌린 의자에도, 사 온 국 재료에도, 오간 돈 한 푼에도 저마다 적힐 칸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새벽부터 굴린 ‘사람’만 칸이 없습니다. 물건과 돈은 기록되는데, 그걸 움직인 사람은 기록되지 않는 거죠.
캐나다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여기에서 곱씹어 볼 만한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사람은 혼자 힘으로 ‘나’가 되는 게 아니라, 남들이 나를 어떻게 알아봐 주느냐 속에서 자기가 누구인지 빚어진다는 겁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여기는지는 상당 부분, 남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고 어디에 세워 주느냐에 기대어 만들어진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알아봐 줌’을 받는 건 단순히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 내가 나로 서 있게 해 주는 바탕에 가깝습니다.
이 눈으로 보면, 명단의 빈자리는 단순한 행정 누락이 아니게 됩니다. 그건 ‘이 일에 당신은 없었던 셈 친다’는 조용한 한 문장일지도 몰라요. 내가 분명히 거기 있었고 분명히 손을 보탰는데, 종이 위에선 없던 사람이 되는 것. 그러니 결산서를 보며 든 그 서운함은 결코 유난이 아니었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잠깐 흐릿해지는 걸, 몸이 먼저 느낀 거니까요.
그렇다고 누굴 미워할 일도 아닙니다. 그 종이를 만든 사람이 못돼서가 아니에요. 애초에 결산서라는 양식은 숫자를 적도록만 만들어졌지, 사람을 적도록은 만들어진 적이 없습니다. 자리가 없는 거예요,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문제는 특정한 누구가 아니라, 사람이 한 일이 새겨질 칸이 시스템 안에 처음부터 그려져 있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빈칸은 악의가 아니라 구조의 모양인 셈이죠.
같은 빈칸이 놓인 자리들
이렇게 보기 시작하면, 같은 모양의 빈칸이 하루 곳곳에 놓여 있다는 게 보입니다. 회사의 성과 보고서엔 매출과 비용, 달성률은 촘촘히 적히는데, 그 숫자를 만들어 낸 사람들의 이름은 대개 빠져 있어요. 프로젝트가 끝나면 결과물은 남아도, 밤을 새운 사람의 자리는 남지 않고요.
집도 다르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몇 십 년 살림을 굴려 왔는데, 그 노동은 어느 가계부에도 어느 이력서에도 한 줄로 적히지 않습니다. 학교에선 조별 과제의 발표자만 기억되고, 자료를 다 만든 뒤 조용히 물러선 아이는 명단에서 흐려집니다. 병원에선 차트에 검사 수치와 처방은 빼곡한데, 정작 밤새 곁을 지킨 보호자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고요. 하나같이 숫자와 결과를 적는 칸은 있는데, 그걸 해낸 사람을 적는 칸만 비어 있는 장면들이에요.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시선을 한 권으로 차분히 펼쳐 둔 책이 찰스 테일러의 『불안한 현대 사회(The Malaise of Modernity)』(1991)입니다. 테일러는 이 책에서, ‘진짜 나답게 산다’는 것이 흔히 오해하듯 혼자 마음속에서 정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나를 알아봐 주는 관계들 속에서 비로소 자리를 잡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관계가 나를 지워 버릴 때, ‘나’라는 감각까지 함께 흔들린다고 봅니다.
이 책이 고마운 건, 결산서의 빈칸 앞에서 왜 그렇게 마음이 헐거워졌는지를 또렷하게 비춰 준다는 점입니다. 내 몫이 어디에도 새겨지지 않을 때 왜 ‘나’라는 사람까지 조금 흐릿해지는지 — 그 당연하지만 자주 잊는 연결을, 누구를 탓하지 않고 차분히 짚어 주거든요. 서운함을 유난으로 넘기지 않고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은 분께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거예요.
저도 예전 같으면 ‘뭐 그런 걸로 서운해하냐’며 그냥 넘겼을 겁니다. 이름 한 줄 빠진 게 뭐 대수냐고요.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 우리가 무언가를 ‘정리’하고 ‘결산’할 때 사람의 자리는 늘 맨 마지막이거나 아예 없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숫자는 빠짐없이 챙기면서, 그 숫자를 만든 사람은 자꾸 빠뜨린다는 것도요.
그러니 오늘 하루, 무심코 지나친 명단이나 결산서나 보고서 한 장을 잠깐 낯설게 다시 봐주세요. 거기 숫자와 결과는 다 있는데, 정작 그 일을 해낸 사람의 칸만 비어 있진 않았는지. 그리고 한 걸음 더 — 내 손이 닿은 일들 가운데, 어디에도 ‘내가 했다’고 적힐 칸이 없던 건 없었는지. 없었다면, 그 빈칸을 가장 먼저 채워 줄 사람은 어쩌면 그걸 알아본 나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 영상으로 보기: YouTube Shorts
📱 매일 한 편의 깨달음 · dignity.ppai-lab.com
🏛 PPAI Lab 형제 채널 — 칼립소(매일 한 편의 이야기) · 칼리오페(매일 한 편의 시) · 플루투스(오늘의 시장)
© 2026 PPAI Lab · Dignity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