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쥐여줄 수도 있었던 몇 초
계산을 마치고 거스름돈과 카드를 돌려받는 순간을 떠올려 봅니다. 어떤 날은 상대의 손끝이 제 손바닥에 닿도록 가만히 놓아주고, 어떤 날은 계산대 위에 툭, 던지듯 내려놓습니다. 액수는 똑같고 걸리는 시간도 몇 초 차이가 안 됩니다. 그런데 던지듯 놓인 동전을 주섬주섬 쓸어 담아 나온 날은, 이상하게 그 장면이 하루 종일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곤 합니다.
비슷한 순간은 계산대 바깥에도 많습니다. 서류를 검토받으러 갔는데 상대가 눈도 맞추지 않고 종이를 책상 위로 밀어놓을 때, 식당에서 접시가 소리 나게 탁 내려놓일 때, 문을 먼저 지난 사람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손을 놓아버릴 때. 하나같이 '뭐라 하기도 애매한' 작은 일들입니다. 항의할 거리도 못 되고, 말을 꺼내면 오히려 제가 예민한 사람이 되어 버릴 것 같은, 그런 크기의 순간들이지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바라보고 싶습니다. 정치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좋은 사회의 기준을 뜻밖의 자리에 두었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나눠주느냐가 아니라,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느냐'에 둔 것이지요. 그는 그런 사회를 '품위 있는 사회'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그가 말한 모욕은, 누군가에게 '나는 여기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느낄 만한 정당한 이유를 건네는 일입니다.
이 정의에서 중요한 건 '정당한 이유'라는 말입니다. 던지듯 놓인 잔돈에 마음이 걸리는 건, 제가 유난히 자존심이 세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럴 만한 근거가 눈앞에 놓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손에 쥐여주는 몇 초와 던지듯 놓는 몇 초, 그 사이의 차이는 돈의 액수가 아니라 앞에 선 사람을 잠깐이라도 '사람'으로 마주 보았는가의 차이입니다. 그러고 보면 그때 계산대에 놓인 건 동전만이 아니라, 서로 눈이 닿을 수도 있었던 잠깐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 몸짓을 한 사람이 유독 못된 사람일까요. 저는 그렇게 보고 싶지 않습니다. 계산대는 속도와 물량으로 돌아가도록 짜인 자리입니다. 줄은 길고, 다음 손님은 이미 카드를 내밀고 있고, 하루에 수백 번 반복되는 동작 속에서 '앞사람과 잠깐 눈을 맞추는 몇 초'는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 몇 초를 챙긴다고 칭찬받지도, 빠뜨린다고 지적받지도 않지요. 모욕은 나쁜 마음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대할 자리 자체가 시스템 안에 마련되어 있지 않을 때 조용히 스며듭니다. 문제는 개인의 인성이 아니라, 그 몇 초가 놓일 칸이 비어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한번 보기 시작하니, 같은 장면이 하루 곳곳에서 눈에 들어옵니다. 직장에서 결재판이 이름도 없이 책상 위로 툭 밀려올 때, 누군가가 '거기요' 한마디로 불릴 때. 관공서나 병원에서 이름 대신 번호로 호명되고, 서류가 유리창 아래 좁은 틈으로 소리 없이 넘어올 때. 집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식탁에 밥그릇이 탁 내려놓일 때, 바쁜 아침에 아이 손에 준비물을 쥐여주는 대신 현관에 던지듯 놓고 나설 때.
어느 것도 큰 사건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작은 건넴들이 모여 하루의 온도를 만듭니다. 한 사람을 '처리해야 할 다음 순번'으로 보느냐, 잠깐이라도 마주 앉은 사람으로 보느냐. 마갈릿의 시선이 알려주는 건, 존엄이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에 이미 깃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선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마갈릿의 『품위 있는 사회』(1996)가 차분한 길잡이가 됩니다. 그는 이 책에서, 좋은 사회란 구성원에게 무엇을 얼마나 베푸느냐로 판가름 나는 게 아니라 그들을 모욕하지 않느냐로 가늠된다고 말합니다. 복지의 크기보다 앞서는 것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가'라는 물음이라는 것이지요. 오늘 계산대에서 스친 그 짧은 몸짓처럼, 모욕이 어떻게 가장 사소한 순간에 조용히 자리 잡는지를 천천히 짚어주는 책입니다.
저도 어제까지는 이런 순간을 그저 '기분이 좀 상했다' 정도로 넘기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한번 다르게 보기 시작하니, 마음이 조금 불편해지는 지점이 생기더군요. 저는 늘 던져진 쪽이었을까요. 어쩌면 오늘 저 역시, 바쁘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툭 놓아버린 쪽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답을 내리기보다, 오늘 하루를 잠깐 낯설게 되감아보시면 어떨까요. 우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주고받는 그 작은 건넴들 속에서, 손에 가만히 놓아드린 순간과 던지듯 놓아버린 순간은 각각 몇 번쯤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 몇 초의 차이를 만드는 건, 정말 시간이 없어서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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