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 그의 자리를 비우기 한참 전에, 그를 찾던 물음이 먼저 떠났습니다
한때는 뭐 하나 막히면 사람들이 제일 먼저 찾던 이가 있습니다. 신입이 조심스레 다가와 묻고, 옆 부서에서 전화가 오고, 급할 땐 윗사람까지 슬쩍 자리로 건너와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였죠” 하고 물었지요. 그의 손을 거쳐야 일이 매듭지어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정년이 가까워진 그의 하루는 조금 다릅니다. 아침에 앉아 저녁에 일어설 때까지, 누구도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생깁니다. 혹시 이런 조용함을, 어느 자리에선가 한 번쯤 곁에서 본 적 있으신가요?
비단 오래 일한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사를 자주 다녀 이제 동네 지리를 훤히 아는 이에게 아무도 길을 묻지 않을 때, 평생 살림을 도맡아 온 어른이 “요즘은 뭐 여쭤볼 게 있어야지” 하는 말을 들을 때, 한 분야를 오래 지켜 온 사람이 회의 테이블 한쪽에서 조용히 앉아만 있다 나올 때. 우리는 무언가를 크게 빼앗기는 장면만 서러운 줄 알지만, 사실 더 자주 겪는 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고요 쪽입니다.
대개 우리는 이런 조용함을 그냥 ‘이제 좀 한가하신가 보다’ 하고 지나칩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히 그렇게 되는 거라고, 세월이 그런 거라고요. 그런데 오늘은 이 조용함을, 세월 탓으로 접어 두기 전에 한 걸음 떨어져서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정작 줄어든 것은 그의 앎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묻는다는 건, 곰곰이 보면 작은 신호 하나를 건네는 일입니다. ‘당신은 아직 뭘 아는 사람’이라는 신호요. 그래서 물음이 오간다는 건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일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아직 이 일의 한 사람’으로 확인해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이런 되비침을 ‘인정(Anerkennung)’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이 한 일이 ‘그 사람이 한 일’로 다시 그에게 돌아올 때, 그때 비로소 사람이 사람으로 선다는 겁니다.
이 눈으로 다시 보면, 그의 하루가 조용해진 이유가 조금 다르게 잡힙니다. 정작 줄어든 건 그의 앎도, 그의 능력도 아닙니다. 어제까지 알던 것을 오늘 아침에 잊어버린 사람은 없으니까요. 줄어든 건 그 앎을 되비쳐 줄 물음 쪽입니다. 능력이 사라진 게 아니라, 능력을 한 번씩 불러내 확인해 주던 물음이 먼저 자리를 뜬 것이지요.
그러고 나면 한 가지가 보입니다. 이 조용함은 누가 그를 내쫓아서 생긴 게 아닙니다. 미워한 사람도, 자리를 뺀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이 조직에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통로는 촘촘히 나 있어도, 오래 쌓인 사람에게 그가 가진 걸 계속 ‘물어봐 주는’ 통로는 애초에 마련돼 있지 않았습니다. 정년이라는 제도가 그의 자리를 비우기 한참 전에, 그를 향하던 물음이 먼저 조용히 자리를 떠난 셈입니다. 그러니 이건 누군가의 무심함을 탓해서 다 풀리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설령 모두가 마음을 먹었어도, 그를 계속 불러 세울 자리 자체가 시스템 안에 비어 있었으니까요.
같은 고요가 스며 있는 자리들
이 시선으로 보기 시작하면, 비슷한 고요가 하루 곳곳에 앉아 있다는 게 눈에 들어옵니다. 집에서는, 한 세월 온 가족의 대소사를 도맡아 정리하던 어른이 어느 날부터 아무 결정에도 불려 나오지 않습니다. 나쁜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제 편히 쉬시라’는 마음이 어느새 물음을 거둬 갑니다. 그런데 쉬게 해 드린다는 그 배려 속에서, 정작 한 사람의 앎이 머물 자리가 슬며시 비어 갑니다.
병실에서 오래 곁을 지킨 보호자가 정작 처치를 정하는 대화에서는 빠질 때, 학교에서 조용한 아이의 잘 아는 대답이 손 빠른 아이의 목소리에 늘 묻힐 때도 결은 같습니다. 어디에나 일을 처리하고 위로 올리는 절차는 또렷한데, 오래 지켜 온 사람을 한 번 제대로 불러 세우는 자리만은 좀처럼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그 빠짐이 마치 ‘원래 그렇게 흘러가는 것’처럼 매끄럽다는 게, 어쩌면 더 오래 마음에 남는 대목입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시선을 차분히 펼쳐 둔 책이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1992)입니다. 저자는 사람이 사랑과 권리, 그리고 사회적 존중이라는 세 겹의 인정을 받을 때 비로소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설 수 있다고 말합니다. 소중히 여겨지고, 한 사람의 몫으로 대우받고, 함께 쌓은 것이 함께한 것으로 되불려질 때에야 사람이 흔들리지 않고 선다는 것이지요. 이 세 겹 중 하나가 조용히 어긋날 때, 사람들은 그저 참는 게 아니라 그것을 되찾으려 한다는 게 이 책의 중심입니다.
그가 들여다본 것도 누가 더 무심한 사람인가가 아니라, 사람의 앎과 일을 제대로 되돌려주지 못하도록 짜인 관계와 제도의 결이었습니다. 오늘처럼 한 사람의 능력이 조용히 방치되는 장면이, 어느 개인의 냉정함이 아니라 어디에 비어 있는 통로에서 오는지를 천천히 따라가 보고 싶을 때 곁에 두기 좋은 책입니다. 책 한 권으로 조직의 양식이 바뀌진 않겠지만, 그 조용함을 보는 눈 하나는 분명 달라집니다.
사실 저도 얼마 전까지는, 유독 한가해 보이는 누군가를 그냥 ‘저분은 이제 좀 편해지셨나 보다’ 하고 지나쳤습니다. 세월이 그런 거라고, 다들 언젠가 그렇게 되는 거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한번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그 한가함이 앎이 줄어서가 아니라 물음이 먼저 잦아든 자리일 수도 있다는 게 뒤늦게 보이더라고요.
그러니 오늘 하루, 언제부턴가 유독 조용해진 누군가가 곁에 있는지 한번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게 된 사람이, 혹시 아직 아무것도 잃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건 아닌지. 그 조용함 곁에 아직 건네지 못한 물음 하나가 남아 있는 건 아닌지. 답을 서두르지 말고, 오늘만큼은 그 자리에 잠시 머물러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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