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붙은 종이 한 장이 지나온 길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문이 닫히고, 층수 버튼 위로 눈이 올라갑니다. 그 옆 벽에 A4 한 장이 붙어 있습니다. 코팅도 하지 않은 흰 종이에, 반듯한 인쇄체. 입주민 민원 한 줄이 그대로 옮겨 적혀 있습니다. 청소하시는 분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불편하다는 내용입니다. 그 아래에는 관리사무소의 답변이 이어집니다. 문장은 정중하고, 오탈자도 없고, 종이는 네 귀퉁이가 테이프로 단정하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엘리베이터는, 오늘도 그 글에 적힌 분이 타고 오르내립니다. 밀대와 양동이를 들고, 층마다 문이 열릴 때마다 한쪽으로 비켜서면서.
비슷한 종이를 다른 곳에서도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상가 화장실 문 안쪽, 청소 시간에는 이용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문 밑에 누가 볼펜으로 눌러 쓴 한 줄. 사무실 탕비실, 커피머신 옆 정리 안내문 아래 덧붙은 문장. 처음에는 그저 안내문이려니 하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잠깐 멈춰 서서 보면, 그 문장이 향하는 사람이 대개 그 자리에 매일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 장면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따라가 보겠습니다. 그 종이가 벽에 닿기까지, 문장은 여러 번 옮겨 적혔습니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짧은 불평이었을 겁니다. 그것이 민원 접수 서식의 칸을 채웁니다. 서식은 답변서로 넘어가고, 답변서는 프린터를 통과하고, 인쇄된 종이는 게시 담당자의 손에 들려 엘리베이터 벽으로 갑니다. 옮겨질 때마다 그 문장은 조금씩 더 공적인 것이 됩니다. 사적인 짜증이 접수번호를 얻고, 접수번호가 공문서의 형식을 얻고, 공문서가 마침내 벽이라는 자리를 얻습니다.
눈여겨볼 것은, 그 긴 경로의 어느 지점에도 이런 확인이 놓여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 문장이 가리키는 사람도 이 엘리베이터를 매일 탄다는 사실 말입니다. 서식은 무엇이 불편한지를 묻습니다. 언제, 어디서, 얼마나 자주 불편한지도 묻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그 사람이 이 종이를 읽게 될지는 어느 칸에서도 묻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를 '품위 있는 사회'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시선의 방향입니다. 무례한 개인을 찾아내 나무라는 쪽이 아니라, 그 말에 벽을 내준 절차 쪽을 보게 하는 눈입니다. 개인의 매너를 따지기 전에, 제도 자체가 사람을 깎아내리도록 짜여 있지는 않은지를 먼저 봅니다.
그렇게 보면 이 벽에 비어 있는 것은 누군가의 예의가 아닙니다. 붙이기 직전에 한 번 묻도록 되어 있는 자리, 그 자리가 없습니다. 절차 안에서 그분은 민원의 '대상'으로는 또렷하게 등장하지만, 그 민원을 읽게 될 '사람'으로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종이는 애초에 누가 읽을 것을 전제로 붙은 걸까요.
같은 자리가 비어 있는 곳들
이 시선을 들고 하루를 걸어 다니면, 같은 빈자리가 생각보다 여러 곳에 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 가방에서 가정통신문이 나옵니다.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는 학생들 때문에 수업이 지연된다는 안내입니다. 문장은 전체를 향해 쓰였지만, 그 교실에서 그 문장이 누구 이야기인지는 아이들이 대개 압니다. 통신문에는 전달 대상을 적는 칸은 있어도, 이 글을 읽고 가장 오래 얼굴이 붉어질 사람을 헤아리는 칸은 없습니다.
병원 접수 창구에도 종종 안내문이 붙습니다. 진료비 감면 대상자는 이쪽 줄에 서 달라는 문구가 다른 안내문들과 나란히, 같은 크기로 붙어 있습니다. 행정의 눈으로 보면 대상자를 정확히 안내하는 문장입니다. 그 줄에 서는 사람의 자리에서 보면, 자기가 어떤 형편인지를 대기실 전체에 알리며 서 있는 시간입니다. 여기서도 절차는 정확했고, 다만 그 정확함이 누구 앞에서 낭독되는지는 검토되지 않았습니다.
사무실 게시판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각이 반복되는 인원에 대해, 로 시작하는 공지가 모두가 지나다니는 벽에 붙습니다. 이름은 없습니다. 이름이 없어도 그 층 사람들은 대개 누구인지 압니다. 이름을 지웠으니 배려했다고 여겨지지만, 지워진 것은 이름뿐이고 사람은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마갈릿이 1996년에 낸 『품위 있는 사회(The Decent Society)』가 있습니다. 이 책의 출발점은 뜻밖에 낮은 곳에 있습니다. 어떤 사회가 정의로운가를 논하기 전에, 적어도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는 않는 사회부터 이야기하자는 제안입니다. 완전히 공정한 사회를 설계하는 일은 크고 오래 걸리지만,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일은 오늘 붙이려던 종이 한 장에서부터 손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책은 나쁜 사람을 고발하는 책이 아닙니다. 오늘 그 엘리베이터에서 눈여겨볼 것이 한 입주민의 무례가 아니라 그 말에 벽을 내준 절차 쪽이라면, 이 책이 바로 그 절차 쪽을 오래 붙들고 들여다봅니다. 한국어판은 신성림 님의 번역으로 나와 있습니다. 다 읽고 나면,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벽의 종이들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도 그날 그 엘리베이터에서, 종이를 다 읽고 그냥 내렸습니다. 눈살을 잠깐 찌푸린 것 말고는 한 일이 없습니다. 어제까지 저에게 그 종이는 '누가 저런 민원을 넣었을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오늘은 다른 것이 보입니다. 그 문장이 벽에 닿기까지 거쳐 간 손이 여럿이었는데, 그중 누구도 특별히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는 것. 각자 자기 칸을 성실히 채웠을 뿐이고, 그 성실함이 모여 종이 한 장이 되었다는 것. 누구를 탓해야 할지 끝내 애매해지는 이 지점이, 어쩌면 제도를 볼 때 가장 오래 머물러야 할 지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에도 종이는 여러 장 붙을 겁니다. 사무실 벽에, 아이 알림장에, 단체 대화방 공지에. 대부분은 읽고 그냥 지나가게 됩니다. 다만 그중 한 장쯤은 잠깐 멈춰 서서 이렇게 물어봐도 좋겠습니다. 이 글은 누구를 향해 쓰였고, 지금 누구 앞에 붙어 있는가. 그 둘이 같은 사람이라면, 우리는 방금 무엇을 붙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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