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는 말 다음에, 아직 발음되지 않은 문장
진로 이야기가 나오는 자리는 대체로 조용합니다. 밥을 먹다가, 성적표를 들여다보다가, 혹은 아무 예고 없이 누군가 묻습니다. 뭐 하고 싶은데. 그러면 오래 접어 두었던 문장 하나를 조심스럽게 펴 보게 됩니다. 저는 이런 걸 해 보고 싶어요.
돌아오는 대답은 대체로 짧습니다. 그건 돈이 안 돼. 다섯 글자면 충분합니다. 꺼내는 데는 몇 달이 걸렸는데 접히는 데는 3초가 걸리지 않습니다.
이 장면이 열일곱의 것만은 아닙니다. 서른의 식탁에서도, 마흔의 술자리에서도 같은 문장이 놓입니다. 그거 해서 뭐 먹고살려고. 요즘 그 바닥 어렵다던데. 그 말을 한 사람에게 악의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대개는 걱정이었고, 어쩌면 절반쯤은 사실이었을 겁니다.
그 다섯 글자 뒤에 무엇이 있었나
마사 누스바움은 사람의 '할 수 있음'을 두 겹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한 겹은 그 사람 안에 자라난 능력입니다. 손끝의 감각, 오래 앉아 있는 집중, 남들이 지나치는 것을 알아보는 눈 같은 것들. 다른 한 겹은 그 능력이 바깥으로 나갈 문이 열려 있는가입니다. 배울 곳이 있는가, 발을 들일 입구가 있는가, 그 일을 하며 살아갈 통로가 뚫려 있는가. 누스바움은 이 둘이 맞물릴 때에만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정말로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문이 닫혀 있으면 안쪽의 능력은 아무 일도 일으키지 못한 채,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지나가 버립니다.
이 눈으로 그 저녁의 식탁을 보면, '그건 돈이 안 돼'는 바깥에 관한 정보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정보이기도 합니다. 그 말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정보로 놓이지 않고 결론으로 놓였다는 점이 눈에 걸립니다.
왜냐하면 그 말 뒤에는 아직 한 번도 발음되지 않은 문장들이 통째로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길에서는 무엇을 배웁니까. 어디에서 시작합니까.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무엇으로 먹고삽니까. 통로가 좁다면 얼마나 좁고, 좁은 대로 걷는 사람들은 어떻게 걷습니까. 이 중 어느 하나도 식탁에 오르지 않은 채 대화가 끝났다면, 문을 닫는 말만 있었고 문을 여는 말이 놓일 자리는 애초에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셈입니다.
여기서 짚고 싶은 것은 그 말을 건넨 사람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사람도 여는 말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어디서도 그 길의 지도를 받아 본 적이 없으니, 손에 쥐고 있는 유일한 문장을 내민 겁니다. 비어 있는 것은 누군가의 선의가 아니라, '그 길을 어떻게 걷는가'를 알려 주는 자리 그 자체입니다. 학교에도, 상담실에도, 저녁 식탁에도 그 자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재능보다 통로가 먼저 사라집니다. 능력이 모자라서 접히는 게 아니라, 능력을 펼칠 자리가 어디인지 아무도 말해 준 적이 없어서 접힙니다.
같은 빈자리는 하루 곳곳에 있습니다
회사에서 새 업무가 떨어집니다. 해 보라고는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익히면 되는지는 아무도 말해 주지 않습니다. 잘하면 능력이 되고 못하면 태도가 됩니다. 배울 자리는 없는데 결과만 있습니다.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듣습니다. 무슨 병인지는 나왔는데, 이제부터 무엇을 바꾸며 어떻게 살아가면 되는지는 3분짜리 진료에 담기지 않습니다. 진단은 놓였는데 살아가는 법이 비어 있습니다.
아이가 몇 시간이고 그림을 그립니다. 잘 그린다는 칭찬은 무성한데, 그 다음에 무엇을 하면 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칭찬은 넘치고 통로는 없습니다.
세 장면 모두 사람이 모자란 게 아닙니다. 능력과 세상 사이에 놓여야 할 다리가 놓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마사 누스바움의 『역량의 창조』(2011)를 권합니다. 한 사회가 잘살고 있는가를 물을 때 국민소득 같은 숫자 대신, 그곳의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보자고 제안하는 책입니다. 평균이 아무리 높아도 어떤 사람 앞에 길이 놓여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의 삶에서 그 길은 없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돈이 안 된다'는 말로 대화가 닫히는 자리에 이 책을 놓아 보면, 무엇이 빠져 있었는지가 조금 또렷해집니다. 빠진 것은 재능도, 의지도, 현실 감각도 아니었습니다. 빠진 것은 그 사이를 잇는 다리였습니다.
저도 어제까지는 이 장면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 역시 누군가에게 그 다섯 글자를 건넨 적이 있습니다. 걱정이었고, 아마 절반은 사실이었을 겁니다. 다만 그 말 뒤에 제가 아무 문장도 놓아 주지 않았다는 것은, 어제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닫는 말은 늘 짧고 빠릅니다. 여는 말은 길고, 대개 아직 아무도 발음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누군가 하고 싶은 일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는다면 — 혹은 오늘 내가 그 말을 꺼내는 쪽이라면 — 그 다음 자리에 놓일 한 문장을,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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