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은 첫날 나왔는데, 부르는 일에는 담당자가 없었습니다

새 사람이 오는 날, 사무실은 꽤 분주합니다. 자리를 닦고, 의자를 하나 더 들이고, 사원증을 만들고, 계정을 열어 줍니다. 급여 계좌를 등록하고, 조직도에 이름을 올리고, 단체 메일 주소록에 한 줄을 추가합니다. 첫날에 해야 할 일은 목록으로 정리되어 있고, 목록의 항목마다 처리할 사람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첫날은 대체로 무사히 지나갑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한 달쯤 지난 어느 정오, 열두 시가 되면 여기저기서 의자 미는 소리가 납니다. 지갑을 챙기는 소리, 오늘 뭐 먹지, 하는 소리. 사람들이 우르르 나가고 나면 사무실에는 한 사람이 남습니다. 조금 뒤에는 회의 소집 알림이 돌지만, 그 알림도 어쩐지 그 한 사람만 비껴갑니다. 규정 위반은 하나도 없습니다. 서류상으로는 모든 것이 정상입니다.

이 장면이 신입 사원만의 것은 아닙니다. 부서를 옮겨 온 사람이 같은 층에 앉아 있는데도 회식 공지 단체방에는 들어 있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매일 함께 일하지만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명단의 어느 칸에도 잡히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쪽도 누가 밀어낸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 사람을 세는 칸이 없었을 뿐입니다.

없었던 것은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사람이 한 사람으로 서는 방식에 대해 이렇게 보았습니다. 우리는 혼자 힘으로 자기가 누구인지를 세우지 못합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함께 무언가를 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 줄 때에야 비로소 온전한 한 사람으로 섭니다. 그는 이것을 인정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뜻은 소박합니다. 사람은 남들이 자기를 한몫하는 사람으로 세어 줄 때 자기 자신으로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눈으로 정오의 사무실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것이 하나 보입니다. 그 사람을 이 공간에 들이기 위한 절차는 첫날에 이미 완결되었습니다. 책상, 계정, 계좌, 조직도. 하나하나 담당자가 있었고, 하나하나 처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일에는 담당자가 없습니다.

입사 절차서를 아무리 넘겨 봐도 그 항목은 나오지 않습니다. 점심 먹으러 갈 때 한 사람을 더 부르는 일, 회의 소집 명단에 이름 하나를 더 넣는 일, 커피 마시러 나갈 때 뒤를 한 번 돌아보는 일. 이 중 어느 것도 어느 부서의 업무 분장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적혀 있지 않은 일은 아무도 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무 문제 없이, 그 일은 그대로 남습니다.

여기서 누구를 탓하기는 어렵습니다. 나가면서 그 사람을 부르지 않은 동료도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부르는 일이 자기 일이라고 배운 적이 없을 뿐입니다. 회의 소집 명단을 만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명단은 지난달 것을 그대로 복사했을 겁니다. 결국 그 사무실에서 비어 있던 것은 그 사람이 앉을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자리에 들이는 일을 자기 몫으로 여기는 사람, 그 자리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비슷한 빈칸은 하루 곳곳에 있습니다

학교에는 전학생이 옵니다. 학적은 하루 만에 처리되고 사물함도 배정됩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그 아이 옆에 누가 앉을 것인가는 어떤 시간표에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배정은 끝났고, 부르는 일만 남습니다.

명절에 새로 합류한 가족이 있습니다. 자리를 마련하고 수저를 놓는 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근황을 묻는 일, 대화가 오갈 때 그쪽으로 한 번 눈을 돌리는 일은 누구의 몫도 아닙니다. 그래서 상은 다 차려졌는데 그 사람만 오래 조용합니다.

병실에 새 환자가 들어옵니다. 침대와 차트와 팔찌는 몇 시간 만에 갖춰집니다. 그런데 옆 침대 사람들이 오늘 무엇을 웃고 있는지, 이 병실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알려 주는 일은 어느 직군의 업무에도 없습니다. 등록은 끝났지만 아직 아무도 그를 세지 않았습니다.

세 장면 모두 규정이 지켜졌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도 애매합니다. 다만 처리되어야 할 것이 전부 처리된 뒤에도, 서류로는 처리되지 않는 일 하나가 매번 남아 있습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1992)을 권합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서는 일은 혼자 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이들의 애정과 법이 보장하는 권리와 사회가 보내는 존중, 이 세 가지 인정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셋 중 하나가 비면 나머지가 아무리 갖춰져 있어도 그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서기 어렵다는 것이 이 책의 시선입니다.

정오의 사무실을 이 책 옆에 놓아 보면, 무엇이 비어 있었는지가 조금 또렷해집니다. 계약도 있었고 권리도 있었습니다. 급여도 정확히 들어왔습니다. 비어 있던 것은 곁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우리 중 하나로 세어 주는 일, 딱 그 한 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은 서류로 처리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어제까지는 이런 장면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갑을 챙겨 나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은 쪽에 제가 서 있던 날도 있었을 겁니다. 부르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저 부르는 일이 제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뿐입니다.

절차서에 적힌 일은 반드시 처리됩니다. 적히지 않은 일은 아무도 하지 않아도 하루가 멀쩡히 지나갑니다. 오늘 우리 곁에도 규정상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혼자였던 사람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 사람을 우리 중 하나로 세는 일은, 오늘 누구의 몫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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