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는 정확했는데, 저를 마주 볼 자리만 비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진료 안내문을 받아 들었을 때의 일입니다. 다음 예약이 언제인지, 무엇을 준비해 오라는지가 적힌 평범한 종이였는데, 맨 아래쪽에 지우다 만 손글씨 한 줄이 남아 있었습니다. 저에게 하는 안내가 아니라, 담당자들끼리 저를 두고 주고받은 짧은 메모였습니다. 다음 사람에게 일을 넘기며 저를 몇 글자로 줄여 적어 둔 말이었죠. 무심코 그 한 줄을 읽어 버린 순간, 이상하게 얼굴이 조금 화끈거렸습니다.
비슷한 일은 생각보다 여러 곳에 있습니다. 민원 서류 귀퉁이에 남은 처리 메모, 택배 송장에 붙은 배송 기사끼리의 쪽지, 상담을 마치고 받아 든 서류 뒤에 미처 떼지 못한 접착 메모. 저에게 건네려던 글이 아니라, 저를 사이에 두고 오간 말이 실수로 제 손까지 따라온 경우들입니다. 혹시 이런 종이 한 장을, 어딘가에서 마주치신 적 있으신가요?
그 한 줄을 읽고 나면, 화가 나기 전에 먼저 묘한 기분이 듭니다. 험한 말이 적혀 있어서가 아닙니다. 정중한 말이든 사무적인 말이든, 그 문장은 처음부터 제가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 — 그게 오래 남습니다.
그 메모는 저를 지나쳐 다른 곳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놓아 보겠습니다. 지우려다 만 그 한 줄은, 정작 그걸 받아 든 사람이 아니라 그 곁의 누군가를 바라보며 쓰였습니다. 저에게 건네는 안내가 아니라, 옆자리 동료가 읽고 다음 일을 이어 가도록 저를 '어떤 건'으로 줄여 적어 둔 기록이니까요. 겨냥한 눈이 처음부터 제가 아니었던 겁니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사람이 사람을 마주하는 방식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하나는 그가 '나-너'라고 부른 자리입니다. 눈을 맞추고, 말을 건네고, 상대를 마주 선 한 사람으로 대하는 자리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그것'이라 부른 자리입니다. 상대를 처리하고 분류해 다음으로 넘겨두는 자리, 필요한 만큼만 다루고 나머지는 접어 두는 자리입니다. 그는 사람을 오직 '그것'으로만 다루는 순간, 그 사이에 열려 있던 관계가 조용히 닫힌다고 말했습니다.
이 눈으로 그 메모를 다시 보면, 무엇이 비어 있었는지가 조금 또렷해집니다. 그 한 줄이 아무렇지 않게 종이에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건, 이 사람이 언젠가 그걸 읽을 '너'라고는 애초에 상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읽을 사람으로 셈해졌다면, 지우는 일은 잊혔더라도 문장 자체가 달라졌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 종이 위에는, 이 사람과 눈을 맞출 자리 하나가 처음부터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셈입니다.
여기서 누구를 탓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메모를 적은 사람이 모질었던 것도, 지우지 않은 사람이 무례했던 것도 아닙니다. 일을 빠르게 넘기는 자리에서는 사람을 짧게 줄여 적는 것이 오히려 성실한 일 처리에 가깝습니다. 다만 그 빠른 흐름 어디에도, 이 기록을 언젠가 당사자가 마주할 수 있다는 자리 하나가 놓여 있지 않았을 뿐입니다. 비어 있던 것은 마음이 아니라, 그 마음이 설 자리였습니다.
같은 빈자리는 하루 곳곳에 있습니다
회사에서 일을 넘길 때 쓰는 인수인계 메모에도 비슷한 빈칸이 있습니다. "이 건은 예민한 분이니 조심"이라는 한 줄은, 다음 담당자만 읽을 것을 전제로 쓰입니다. 그 문장이 언젠가 당사자 앞에 놓일 수 있다는 가정은 대개 그 안에 없습니다.
가게에 달린 후기에 정중히 답을 달면서, 화면 뒤에서는 그 손님을 두고 전혀 다른 말이 오가기도 합니다. 앞에 보이는 답변은 '너'에게 건네는 말이고, 뒤에서 오가는 말은 '그것'을 정리하는 말입니다. 학교의 상담 기록도, 콜센터의 통화 메모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 사람을 '대해' 적는 말과 그 사람에게 '건네는' 말 사이에는, 매번 눈을 맞출 자리 하나가 조용히 비어 있습니다.
어느 장면에서도 규정이 어겨지지는 않았습니다. 기록은 정확했고, 처리는 신속했습니다. 다만 그 정확하고 신속한 흐름 위에, 이 기록의 끝에 사람이 한 명 서 있다는 사실만은 좀처럼 적히지 않습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1923)를 권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엔 두 가지가 있어서, 상대를 '너'로 마주할 때에야 비로소 참된 만남이 열리고, '그것'으로 다룰 땐 그 사람이 하나의 대상으로 굳어 버린다고 말하는 얇지만 깊은 책입니다. 부버는 우리가 늘 '너'로만 살 수는 없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세상을 다루려면 사람을 '그것'으로 대하는 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요. 다만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전부가 되어 버리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열릴 수 있던 무언가가 닫힌다고 그는 조용히 일러 줍니다.
메모 속 '처리할 대상'으로 적힌 한 사람을 다시 볼 때, 이 책의 '너'와 '그것'만큼 그 한 줄을 새로 비춰 보게 하는 눈도 드뭅니다. 그 짧은 기록 어디에 '너'라 마주 볼 자리가 있었는지를, 이 책은 다그치지 않고 가만히 묻습니다.
저도 어제까지는 이런 종이 한 장을 그냥 접어 두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누군가를 '처리할 일'로 짧게 적어 넘긴 쪽에 제가 서 있던 날도 적지 않았을 겁니다. 그 사람을 낮춰 보려던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저 그 말이 언젠가 그 사람에게 가닿을 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셈해 본 적이 없었을 뿐입니다.
오늘 오간 안내와 응대, 남긴 기록과 넘긴 말 가운데, 마주 볼 자리 하나가 비어 있진 않았는지. 오늘 제가 누군가를 '두고' 적거나 말한 것들 가운데, 그 사람 앞에 그대로 놓여도 괜찮을 말은 얼마나 될까요. 그 빈자리에 눈길이 한 번 머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 '대해' 하던 말은 그 사람에게 '건네는' 말 쪽으로 반 발쯤 돌아설지 모릅니다.
🎬 영상으로 보기: YouTube Shorts
📱 매일 한 편의 깨달음 · dignity.ppai-lab.com
🏛 PPAI Lab 형제 채널 — 칼립소(매일 한 편의 이야기) · 칼리오페(매일 한 편의 시) · 플루투스(오늘의 시장)
© 2026 PPAI Lab · Dignity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