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를 '할 수 있다'는 것
모처럼 밖에서 밥 한 끼를 하려고, 곁을 도와주는 분과 함께 식당 문을 엽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치는데, "여기는 한 분당 메뉴 하나씩은 주문하셔야 합니다"라는 말이 돌아옵니다. 같이 온 그분 몫까지요. 주문을 하려던 손이 잠깐 허공에서 멈춥니다.
비슷한 장면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어르신을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 근처 식당에 잠깐 들른 보호자. 앞이 잘 안 보이는 친구의 팔을 잡고 카페에 함께 앉은 사람. 한쪽은 정말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러 왔고, 다른 한쪽은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곁에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 앞의 규칙은 이 둘을 똑같이 '한 사람'으로 셉니다.
일단은 해석을 접어 두고, 이 장면을 조금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규칙이 세지 못한 자리
규칙이 헤아리는 것은 자리에 앉은 사람의 수입니다. 앉은 사람이 둘이면 메뉴도 둘 — 여기까지는 딱히 어긋난 데가 없어 보입니다. 다만 그 둘의 결이 서로 다르다는 데서 이야기가 갈립니다. 한 사람은 먹으러 왔고, 다른 한 사람은 그 한 사람의 외출을 여는 조건으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같은 의자에 앉아 있어도, 한쪽은 손님이고 한쪽은 그 손님이 손님일 수 있게 만드는 '곁'인 셈이죠.
마사 누스바움은 존엄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봅니다. 무엇을 해도 좋다는 허락이 아니라, 그 일을 실제로 해낼 수 있느냐 — 그 실질적인 자유에 존엄이 있다고요. 식당에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과, 정말로 밥 한 끼를 편히 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입니다. 뒤엣것이 이루어지려면 곁에서 문을 열어 주고, 자리를 봐 주고, 필요한 손을 보태 주는 '도움'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 도움은 밥 한 끼를 '할 수 있음'을 떠받치는 조건입니다.
그런데 방금의 규칙에는 이 조건을 놓을 칸이 없습니다. 규칙이 아는 것은 '앉은 사람'과 '시킨 메뉴'뿐이라, 한 사람의 외출을 여는 도움조차 그저 손님 하나로 다시 세어집니다. 그렇게,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앉기 위한 조건에 슬며시 값이 붙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보고 싶은 건, 이게 누가 못돼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안내한 분도, 그 규칙을 세운 분도 특별히 야박한 마음을 먹은 게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규칙 안에 '도움을 놓을 칸'이 처음부터 없었을 뿐입니다. 누군가의 마음보다, 시스템의 빈자리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순간입니다.
이 빈자리는 식당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회의에서 우리는 발언한 사람을 기여자로 셉니다. 그 사람이 준비된 채로 그 자리에 설 수 있게, 밤새 자료를 정리하고 숫자를 맞춰 둔 손은 어느 칸에도 잘 잡히지 않습니다.
시험은 아이가 받은 점수를 셉니다. 그 아이가 아침에 제때 일어나 시험장에 앉을 수 있도록, 새벽부터 도시락을 싸고 체온을 살핀 손은 성적표 어디에도 적히지 않습니다. 진료는 예약한 환자 한 사람을 셉니다. 몸이 불편한 그를 병원까지 데려오고, 접수증을 대신 쥐고, 진료실 앞에서 함께 기다린 사람은 그날의 환자 명단에 없습니다.
세는 방식이 저마다 다를 뿐, 결은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 뒤에는, 그 결과가 '가능하도록' 받쳐 준 보이지 않는 몫이 거의 늘 함께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셈법이 아직 그 몫을 담을 칸을 마련해 두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런 시선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마사 누스바움의 《역량의 창조》(Creating Capabilities, 2011)를 펼쳐 볼 만합니다. 이 책은 사람이 존엄하게 산다는 것을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로 바라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한 사회가 잘 살고 있는지를, 사람들이 실제로 누릴 수 있는 '할 수 있음'의 목록으로 살펴보자고 말합니다.
밥 한 끼를 '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곁에 갖춰져야 하는가 — 이 책이 던지는 물음은 오늘 그 식당의 자리에도 그대로 놓입니다. 자리에 앉는 것까지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정말로 한 끼를 할 수 있게 하는 조건까지 함께 헤아릴 때, 비로소 그 한 끼가 온전해지니까요.
저도 얼마 전까지는 이런 규칙 앞에서 별생각 없이 지나쳤습니다. 한 사람당 하나씩, 그게 공평해 보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앉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거기 앉을 수 있게 해 준 것'까지 한 번 시야에 넣고 나면, 같은 규칙이 조금 다르게 읽히기 시작합니다.
오늘 하루, 어딘가에서 '한 사람 몫'을 세어 본 자리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 자리 뒤에, 그 한 사람이 거기 있을 수 있도록 조용히 받쳐 준 다른 몫은 없었을까요. 그 보이지 않던 쪽에 잠깐 시선을 두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조금 다르게 읽힐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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