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정하는 자리

퇴근 시각이 지난 사무실에 불이 몇 칸만 남아 있습니다. 수화기를 든 사람은 아직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저쪽의 말은 좀처럼 끝나지 않고, 이쪽에서는 먼저 끊을 수가 없습니다. 화가 난 목소리도 아니고, 대단한 사건도 아닙니다. 그저 말이 길어졌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이 통화는 끝나지 않습니다. 응대 규정에 '먼저 끊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어딘가에서 한 번쯤 스쳐 보셨을 저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 닫을 시각이 지난 매장에서, 마지막 손님의 이야기가 길어지는 동안 셔터를 반쯤 내린 채 서 있던 사람. 상담이 끝났는데도 학부모의 전화가 이어져 교무실에 혼자 남아 있던 선생님. 창구가 닫힌 뒤에도 민원인의 말을 끝까지 받아 적던 손. 장면은 저마다 다르지만,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이유가 상대에게 있지 않다는 점은 닮아 있습니다.

매뉴얼이 적어 두지 않은 문장

이 통화를 붙들고 있는 것은 수화기 너머의 말이 아닙니다. 먼저 끊지 말라는 규정의 한 줄입니다. 응대 매뉴얼은 놀랍도록 촘촘합니다. 첫인사의 문장, 목소리의 높이, 사과를 건네는 순서, 통화를 마치는 인사말까지 전부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촘촘한 문서 어디에도 '이 통화를 언제 끝내도 되는지'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시작하는 법은 있는데, 멈춰도 된다는 허락이 없습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사람을 한낱 수단으로만 다루지 말고 언제나 목적으로도 대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자주 놓치는 대목이 있습니다. 사람을 수단으로 쓰는 일 자체를 금지한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수단이 되며 삽니다. 상담원은 회사에 필요한 손이고, 저는 누군가의 노동에 기대어 하루를 삽니다. 칸트가 그은 선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무언가를 얻어 내기 위해 '거쳐 가는 통로'로만 쓰지 말라는 것. 통로에는 사정이 없고, 저녁이 없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통로는 그저 열려 있으면 됩니다.

그렇게 보면 이 저녁의 문제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응대 시간은 초 단위로 기록됩니다. 통화 건수도, 평균 응대 시간도, 만족도 점수도 남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누구의 저녁에서 잘려 나왔는지는 어느 칸에도 남지 않습니다. 기록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뤄지기 마련입니다. 시스템은 상담원을 미워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상담원이 '끝낼 수 있는 사람'으로 등록될 칸을 만들어 두지 않았을 뿐입니다.

끝을 정할 수 있는 자리가 한쪽에만 있을 때, 그 규정이 지키고 있는 것은 통화의 연결입니다. 연결을 붙들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요.

같은 모양의 빈칸은 하루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회의가 길어질 때, 끝낼 시각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대개 한 사람뿐입니다. 나머지는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병동의 교대 시각이 지나도 인계가 끝나지 않을 때, 먼저 가방을 드는 쪽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명절 저녁, 상이 물러가고 설거지가 끝난 뒤에도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는 사람은 늘 같은 사람이곤 합니다.

이 장면들에는 악역이 없습니다. 회의를 늘린 사람도, 인계를 붙든 사람도, 부엌에 남은 사람을 붙잡아 둔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이제 그만해도 됩니다'라는 문장을 꺼낼 수 있는 자리가 처음부터 한쪽에만 놓여 있었을 뿐입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칸트가 1785년에 쓴 『도덕형이상학 정초』(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를 권해 드립니다. 도덕의 최고 원리를 찾아 세운 짧은 책이고, 그 원리를 달리 말한 한 형태가 바로 '사람을 한낱 수단으로만 다루지 말고 언제나 목적으로도 대하라'입니다.

이 책이 매력적인 것은 착하게 살라고 타이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지금 따르고 있는 이 규칙은,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무엇으로 취급하고 있는가. '먼저 끊을 수 없다'는 한 줄 앞에서 무엇이 비어 있었는지 짚어 보려 할 때, 이 오래된 문장은 꽤 쓸모 있는 출발점이 됩니다.

저도 어제까지는 이런 저녁을 그냥 넘겼습니다. 통화가 길어지면 상대가 무례한 거라고 생각했고, 규정이 야박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작 그 규정에 무엇이 빠져 있는지는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 부끄럽게도, 제가 통화를 걸었던 쪽이었던 저녁도 분명 있었을 겁니다.

규정에는 사람을 지키려고 쓴 문장이 많습니다. 다만 그 문장들이 지키는 명단에, 종종 한 사람의 이름이 빠져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어떠신가요. 회의든 통화든 저녁 식탁이든, '이제 그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쪽에 서 계셨는지, 아니면 누군가 그 말을 꺼내 주기를 기다리는 쪽에 서 계셨는지. 그리고 그 자리를 정한 것이 정말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아무도 다시 읽지 않는 한 줄의 규정이었는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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