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 있다는 말과, 들어갈 수 있다는 말 사이

며칠을 벼르다 나선 걸음이었다고 합니다. 서류를 챙기고 봉투에 넣어 아침 일찍 구청까지 가셨는데, 창구에서 돌아온 안내는 한 문장이었습니다. “그 민원은 이제 앱으로만 접수됩니다.” 그 앱을 깔 줄 몰랐던 그분은, 챙겨 간 봉투를 그대로 든 채 돌아 나오셨다고 합니다.

비슷한 뒷모습은 사실 곳곳에 있습니다. 주문을 화면으로만 받는 식당에서 뒤에 늘어선 줄을 등으로 느끼며 진땀을 흘리는 분, 표가 휴대폰 안에서 먼저 다 팔린 줄 모르고 새벽부터 역 창구에 줄을 서신 분, 지점이 사라진 동네에서 통장 정리 한 번을 위해 버스를 두 번 갈아타는 분. 장면은 제각각이어도 구조는 닮았습니다. 문은 분명히 있는데, 어떤 손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저도 이런 장면을 오래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정도로 넘겨 왔습니다. 그런데 그날의 안내문 속 한 단어가 자꾸 걸렸습니다. “됩니다.” 되긴 됩니다. 다만 누구에게 되는지가, 그 문장에는 빠져 있었습니다.

‘있다’는 것과 ‘할 수 있다’는 것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평생 이 간격을 들여다본 사람입니다. 그가 보기에, 한 사회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마련해 주었느냐는 이야기의 절반일 뿐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그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느냐이고, 센은 바로 이 ‘실제로 할 수 있음’을 자유라고 불렀습니다. 자유는 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그 문을 열고 지나갈 수 있다는 사실 쪽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선을 얹으면 그날의 구청 장면이 조금 다르게 드러납니다. “앱이 있으니 서비스는 열려 있습니다”는 문 쪽의 사정입니다. “저는 그 앱을 쓸 수가 없습니다”는 사람 쪽의 사정입니다. 우리는 자주 앞의 문장으로 뒤의 문장을 덮습니다.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 서비스에 가 닿지 못한 사람의 존재를 가려 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날 발길을 돌린 분이 무언가 모자랐던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누구나 쉽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그리는 ‘누구나’ 안에, 처음부터 그분의 손은 그려져 있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시스템이 표준으로 삼은 사용자가 따로 있었고, 그 표준 바깥의 손을 위한 자리는 설계에 없었던 것입니다. 개인의 사정처럼 보이는 일 뒤에, 이렇게 비어 있는 자리 하나가 숨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 시선을 들고 하루를 걸어 보면, 같은 간격이 곳곳에서 눈에 들어옵니다. 병원 로비의 접수 기계 앞에서 한참을 서 계시는 분. 학교 알림이 전부 앱으로만 오는데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조부모인 집. 회사가 새 시스템을 들이면서 “사용법은 링크를 참고하세요” 한 줄로 안내를 대신할 때, 그 링크 앞에서 조용히 막막해지는 동료. 전부 분명히 ‘제공되고 있는’ 것들이고,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 간격이 잘 보이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문 앞에서 돌아서는 사람은 대개 항의하지 않고 그냥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 안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문은 언제나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통과한 사람만 남은 자리에서는, 문이 늘 열려 있었던 것처럼 기억되는 법이니까요.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으시다면, 아마르티아 센의 『불평등의 재검토』(1992)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센은 이 책에서,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졌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사람마다 몸과 형편과 처지가 다르기에 같은 것이 주어져도 그것으로 실제 꾸릴 수 있는 삶은 저마다 다르고, 그래서 무엇이 주어졌는지가 아니라 각자가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중심 생각입니다. ‘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말이 왜 어떤 분께는 닫힌 문이 되는지, 그 이유를 차분히 따라가 볼 수 있는 책입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그런 앱쯤 몇 분이면 깝니다. 그래서 어제까지는 이 간격이 제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온 문들이 실은 제 손에 맞춰 만들어져 있었다는 것, 그리고 같은 문 앞에서 소리 없이 돌아선 뒷모습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 장면을 만나고서야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질문 하나만 주머니에 넣고 다니려 합니다. ‘참 편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면 잠깐 멈춰서, 이 편리가 누구의 손에 맞춰져 있는지 헤아려 보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쉽게 통과한 이 자리를, 누군가는 오늘도 말없이 돌아 나가지는 않았는지도요. 그 짧은 멈춤 하나만으로도, 늘 다니던 하루의 길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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