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서 켜지는 3초
회의 시작 몇 분 전, 복도에서 휴대폰을 꺼냅니다. 잠금을 풀고, 녹음 앱을 열고, 버튼을 한 번 누릅니다. 화면 위쪽에 빨간 점이 켜지고 숫자가 0초부터 올라가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화면을 끄고 주머니에 넣습니다. 그러고 문을 엽니다. 안에서는 평소처럼 인사가 오가고, 자료가 넘어가고, 종이컵 뚜껑이 열립니다. 방금 복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 순서가 언제 생겼는지는 정작 본인도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날 하지 않은 말이 한 것으로 정리되어 돌아왔거나, 함께 정한 일이 어느새 혼자 정한 일이 되어 있었거나 했겠지요. 그날 이후로 문 앞에서는 손이 먼저 움직입니다. 3초면 끝나는 일이고, 밖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비슷한 손짓은 회의실 밖에도 흩어져 있습니다. 전화를 받기 전에 통화 녹음이 켜져 있는지 확인하는 손, 메신저 대화를 캡처해 따로 모아 두는 손, 방금 말로 들은 지시를 굳이 메일로 한 번 더 적어 보내며 참조란에 이름 하나를 더 넣는 손. 하나같이 조용하고, 하나같이 짧습니다.
조심하는 손과, 그 손이 들어서는 방
이 손짓들을 성격으로 정리하면 이야기는 금방 끝납니다. 좀 예민한 사람, 사람을 잘 못 믿는 사람. 그런데 녹음이라는 것이 원래 어디에 쓰이던 물건인지 옆에 놓아 보면 다른 것이 보입니다. 녹음은 대개 남겨 두고 싶은 것을 담습니다. 아이 목소리, 좋아했던 공연, 나중에 다시 듣고 싶은 강의. 담아 둔 것을 언젠가 꺼내 들으려고 켭니다. 그런데 문 앞에서 켜지는 녹음은 꺼내 들을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켜집니다. 담는 쪽이 아니라 대비하는 쪽입니다.
이스라엘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좋은 사회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마음씨보다 제도 쪽을 봅니다. 그가 말한 '품위 있는 사회'는 사람들이 서로 친절한 사회가 아니라,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모욕하지 않는 일과,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일을 그는 따로 떼어 둡니다. 앞의 것은 각자의 몫이고, 뒤의 것은 방과 규칙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좋은데 방이 사람을 작게 만드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그 눈을 빌려 복도의 3초를 다시 놓아 보면, 비어 있는 자리가 하나 보입니다. 그 회의실에는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남는 곳이 없습니다. 정해진 일이 어디에 어떤 형태로 적히는지, 나중에 이야기가 달라졌을 때 무엇을 펴 보면 되는지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방이 그 몫을 맡고 있지 않으니, 들어서는 사람이 각자 자기 몫의 기록 장치를 챙겨 옵니다. 원래 방이 감당했어야 할 일을 한 사람의 휴대폰이 대신 떠안고 있는 셈입니다.
떠안는 데는 값이 듭니다. 저장 공간이나 배터리 이야기가 아닙니다. 켜 두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지 신경 쓰는 마음, 그렇게까지 하는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 같은 것들입니다. 방이 안전을 마련해 두지 않으면 안전은 사라지지 않고 각자에게 청구됩니다. 대개 그 방에서 가장 아쉬운 쪽부터입니다.
각자 챙겨 오는 것들
진료실 앞에서도 비슷한 손이 움직입니다. 짧은 설명을 놓칠까 봐, 다시 물어볼 자리가 마땅치 않을 것 같아 녹음을 켜 두는 손 말입니다. 학교 상담을 앞두고 오간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어 두는 손도 있고, 서류에 서명하기 전에 각 장을 사진으로 남기고 담당자 이름을 따로 메모해 두는 손도 있습니다.
눈여겨볼 만한 것은, 이런 자리 가운데 어떤 곳에는 이미 녹음이 켜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화를 걸면 상담 내용이 녹음된다는 안내가 먼저 나옵니다. 다만 그 녹음이 누구를 위해 돌아가고 있는지, 필요할 때 그것을 꺼내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통화를 시작하는 쪽에서 알기 어렵습니다. 같은 빨간 점이라도 어느 편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하는 일이 달라집니다.
이 자리들의 공통점은 누가 못되게 굴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대체로 다들 바쁘고, 대체로 친절합니다. 다만 이야기가 나중에 달라졌을 때 기댈 곳이 어디에도 놓여 있지 않고, 그 빈자리를 각자가 자기 방식으로 메우고 있을 뿐입니다.
이 물음을 정면으로 붙들고 있는 책이 아비샤이 마갈릿의 『품위 있는 사회』(The Decent Society, 1996)입니다. 좋은 사회란 서로 친절한 사회가 아니라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라는 생각을, 모욕이라는 축 하나로 끝까지 밀고 나간 책입니다.
이 책이 오늘 장면과 닿는 곳은 시선의 방향입니다. 모욕이라고 하면 대개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책은 그보다 창구의 생김새와 서식의 칸, 사람을 세워 두는 방식 쪽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아무도 나쁜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 자리를 지나온 사람이 작아져 있다면, 까닭은 사람보다 배치 쪽에 있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문 앞에서 녹음 버튼을 누르는 손을 그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방의 사정으로 읽어 보고 싶을 때, 이 책이 곁에 둘 만합니다.
저도 어떤 대화 뒤에는 메일을 한 통 씁니다. 말씀 주신 내용 정리해 두었습니다, 하고 시작하는 메일입니다. 정리가 목적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솔직히 말하면 남겨 두는 쪽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제 꼼꼼함이라고만 불렀지, 그 메일을 쓰게 만든 자리가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한 번도 헤아려 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 하루에도 조용히 켜지고 남겨진 것들이 있을 겁니다. 사진 한 장, 메일 한 통, 이름 하나 적어 둔 메모. 그것들은 각각 무엇을 대신하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방향을 한 번 돌려서, 제가 만드는 자리에 들어오는 사람은 문 앞에서 무엇을 챙겨 와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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