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름 안에 이름이 없을 때

저녁 여덟 시, 홀이 가장 붐비는 시간입니다. 카운터 안쪽에 서 있으면 손님보다 목소리가 먼저 도착합니다. "야! 알바!" 뒤이어 오는 말은 두 마디뿐입니다. "소주." 그리고 잠시 뒤 "계산."

거친 말은 아닙니다. 욕이 섞인 것도, 목소리를 높인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군더더기 하나 없이 필요한 만큼만 말한 문장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서 본 사람들은 그 몇 초가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고 말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하기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남습니다.

편의점 계산대에서도, 주유소에서도, 문 앞에 선 배달 기사에게도 비슷한 부름이 오갑니다. "여기요"가 붙으면 그나마 나은 편이고, 바쁠 때는 그것마저 생략됩니다.

세 마디가 가리킨 것들

오간 말을 종이에 적어 보면 세 덩어리입니다. 호명 하나, 물건 하나, 절차 하나. "소주"는 진열대 위의 물건을 가리킵니다. "계산"은 지금 처리되어야 할 순서를 가리킵니다. "알바"는 그 물건과 순서를 처리하는 기능을 가리킵니다. 세 마디 모두 무언가를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습니다. 다만 셋 중 어느 것도 카운터 안쪽에 서 있는 사람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이 오래 붙들고 있던 말이 '존중'입니다. 그가 말하는 존중은 예절 교육을 잘 받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존중은 공기처럼 떠다니다 저절로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먼저 건네야 비로소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건네지 않으면 생기지 않습니다. 나쁜 마음이 있어야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건네지 않으면 그냥 없는 채로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 장면에서 빠져 있던 것은 예의범절이 아닌 듯합니다. 예의범절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곧장 사람의 됨됨이로 좁아지고, 부른 사람 한 명을 나무라는 데서 끝납니다. 그보다 먼저 눈에 걸리는 건 다른 쪽입니다. 그 카운터에는 애초에 그 사람을 부를 이름이 없었습니다. 명찰이 없거나, 있어도 이름 대신 역할이 적혀 있습니다. 손님이 알 수 있는 것은 "저 사람은 여기서 일한다"는 사실 하나뿐입니다. 부를 이름이 주어지지 않으면 부름은 역할로 대신됩니다.

급할수록 부름이 짧아지는 것도 같은 자리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짧아진 부름 안에는 지금 필요한 기능만 남습니다. 그 기능을 잠시 맡고 있는 사람은 소리 없이 빠집니다. 그날 주문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소주가 나갔고 계산이 끝났습니다. 그 정확한 주고받음 속에서 유일하게 오가지 않은 것이 있다면, 거기 한 사람이 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름이 오가는 자리들

같은 눈으로 보면 이런 자리가 하루 곳곳에 있습니다. 병실에서는 사람이 종종 침대 번호로 불립니다. 3번 침대의 검사가 남았다는 말은 업무를 정확히 전달하는 말이지만, 그 말 안에 이름이 놓일 칸은 없습니다. 콜센터에서는 상담원이 사번으로 호명되고, 전화를 건 쪽에서도 "상담원"이라는 세 글자 말고는 상대를 부를 방법이 없습니다.

교실에서는 번호가, 회의실에서는 "인턴"이나 "신입"이 이름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부름은 밖에서만 오가는 것도 아닙니다. 집에서도 이름 대신 "야" 한 글자로 사람을 부르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 자리들의 공통점은 부르는 사람이 특별히 모질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대개는 그 자리에 이름이 놓일 칸이 처음부터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이름은 업무에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니어서 어느 서식에도, 어느 명찰에도, 어느 호출 방식에도 자리를 얻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리를 얻지 못한 것은 바쁠 때 가장 먼저 사라집니다.

이 시선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리처드 세넷의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Respect in a World of Inequality, 2003)이 곁에 둘 만한 책입니다. 세넷은 가난이나 지위의 차이 앞에서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고 서로 존중하는 일이 왜 그토록 어려운지, 그럼에도 어떻게 가능한지를 들여다봅니다.

이 책이 오늘 장면과 닿는 지점은 분명합니다. 존중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면 그저 마음을 곱게 먹으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존중이 누군가 건네야만 오가는 것이라면, 건넬 수 있게 만들어 두었는지가 함께 물어집니다. 호칭이 기능 하나로 줄어들었던 그 몇 초 옆에 이 책을 놓아 보면, 비어 있던 자리가 조금 더 또렷해집니다.

저도 어제까지는 이런 장면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급하면 저도 "저기요" 하고 불렀고, 더 급한 날에는 그마저 생략한 채 손짓만 한 적도 있습니다. 무례하게 굴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목소리를 높인 적도 없고요. 다만 그날 저를 도와준 사람이 어떤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는 한 번도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 하루 오간 부름을 한번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요. 내가 누군가를 부른 말, 그리고 누군가 나를 부른 말 가운데 이름이 들어 있던 것은 몇 개쯤이었는지. 그리고 이름이 빠져 있던 자리에는 애초에 이름이 놓일 칸이 있기는 했는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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