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라는 말이 이미 셈해 둔 것
햄버거 하나 먹으려고 매장 문을 열면, 사람보다 화면이 먼저 앞에 섭니다. 첫 장부터 누를 것이 촘촘히 펼쳐집니다. 신메뉴 안내가 한 번 지나가고, 매장에서 드실지 가져가실지를 묻고, 사이드는 무엇으로 바꿀지를 묻습니다. 그러는 사이 뒤로는 줄이 한 사람씩 늘어납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잠깐 멈춰 서면, 그 몇 초가 유난히 길어집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먼저 오고, 손끝은 그만큼 더 굳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시키지 못한 채 문을 나섰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한 번쯤 들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병원 로비의 무인 접수기 앞에서도, 역 대합실의 발매기 앞에서도 비슷한 몇 초가 지나갑니다. 그리고 이런 장면은 대개 '요즘 세상이 그렇지' 한마디로 정리되고 넘어갑니다.
허락과 해낼 수 있음
주문 화면 맨 위에는 대개 '터치하여 시작하세요' 같은 안내가 떠 있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고르고, 스스로 담고, 스스로 결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문장만 보면 막아 놓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자유를 조금 다른 자리에서 보았습니다. 무언가를 해도 된다고 허락되어 있는 것과, 어떤 사람이 그것을 실제로 해낼 수 있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아직 아무것도 말해지지 않습니다. 그 문턱을 넘을 수 있는지가 함께 물어질 때 비로소 자유라고 부를 만한 것이 됩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곧 자유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 눈으로 화면 위의 문장을 다시 읽으면, 문장 뒤에 조용히 붙어 있는 조건들이 보입니다. 화면이 어떤 순서로 넘어갈지 짐작하는 눈. 정해진 시간 안에 하나를 고르는 손. 그리고 뒤에 늘어선 줄 앞에서 서두르지 않을 여유. 화면은 이 조건들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요구하지 않는다는 건 없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갖춰져 있다고 셈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 셈이 빗나간 사람에게는 무엇이 남을까요. 예전에는 모르면 물어볼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지금 비어 있는 것은 바로 그 두 번째 길입니다. 물어볼 사람도, 오래 걸려도 기다려 주는 창구도 놓여 있지 않으면, 모른다는 사실 하나로 길이 끝납니다. 화면은 해마다 한 장씩 늘어났고, 그 앞에서 막힌 사람을 받아 줄 자리는 그만큼 한 칸씩 접혔습니다.
이것을 그 매장의 인정 없음으로 돌리면 이야기가 금방 짧아집니다. 그보다 눈에 걸리는 건 그 자리에서 무엇이 잘된 일로 재어지는가입니다. 줄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는 곧바로 재어지고, 오래 걸리는 손님은 그 셈 안에서 지연으로만 나타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을 위한 자리는 더 낫게 만들 대상이 아니라 줄여야 할 대상이 됩니다.
화면이 먼저 서 있는 자리들
관공서 창구에도 같은 화면이 서 있습니다. 서류 한 장을 떼려면 기계 앞에 서야 하고, 기계가 묻는 말의 뜻을 모르면 거기서 멈춥니다. 창구에 사람이 앉아 있어도 줄이 길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저쪽 기계로 하시면 금방 된다는 안내가 옵니다. 나쁜 마음이 담긴 말은 아닙니다. 다만 그 말은 기계를 다룰 수 있는 사람에게만 길이 됩니다.
병원 예약이 앱으로 옮겨간 자리도 그렇습니다. 전화로 받는 창구가 줄어들면, 앱을 깔고 본인 인증까지 통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서 진료 날짜가 달라집니다. 학교에서 오는 알림과 신청이 앱 하나로 모이면, 그 앱을 다룰 수 있는 보호자와 그렇지 못한 보호자 사이에서 아이에게 닿는 안내가 달라집니다.
이 자리들의 공통점은 누구를 못 하게 막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어디에도 금지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 열린 문 앞에는, 이미 무엇을 갖춘 사람만 도착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 물음을 오래 붙들고 있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아마르티아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Development as Freedom, 1999)입니다. 이 책에서 발전은 소득이 늘어나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누릴 수 있는 자유가, 그러니까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넓어지는 일입니다.
이 책이 오늘 장면과 닿는 지점은 물음의 위치입니다. 편리해졌다는 말은 대개 평균으로 말해집니다. 센은 그 앞에 다른 물음을 놓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하려던 일을 실제로 해낼 수 있게 되었는가. 화면 앞에서 멈칫하다 그냥 나온 몇 초를 그 물음 옆에 놓아 보면, 그 자리에 무엇이 없었는지가 조금 또렷해집니다.
저는 그 화면 앞에서 막힌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래 몰랐습니다. 손이 알아서 움직여 삼십 초면 결제까지 끝났고, 저는 그 빠름을 제 몫의 능력이라고 여겼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앞사람이 화면 앞에서 한참 머물 때 시계를 본 적도 있습니다.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것은 늦어지는 줄이었고, 그 사람 앞에 무엇이 놓여 있지 않은지는 보지 않았습니다.
오늘 하루에도 제가 별 어려움 없이 통과한 화면과 절차가 여럿 있었을 겁니다. 그 화면들은 저에게 이미 무엇이 갖춰져 있다고 셈하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 셈이 빗나가는 사람에게, 그 자리에는 어떤 다른 길이 남아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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