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는 오갔는데, 누구에게서 왔는지는

건물 현관에서 마침 아는 얼굴과 마주쳤습니다. 며칠 타이밍을 놓치고 지나쳤던 참이라, 이번에는 큰맘 먹고 먼저 소리를 냈습니다. 안녕하세요, 하고요. 그런데 그분의 눈이 제 얼굴에 잠깐 머무는가 싶더니 제 어깨 너머로 옮겨 갑니다. 뒤에 서 있던 사람에게요. 반가운 목소리의 답례가 그쪽으로 갑니다.

그 몇 초 동안 저는 손을 어디에 둘지 몰랐습니다. 못 들으셨나 싶어 한 번 더 소리를 낼까 하다가, 그러면 더 이상해질 것 같아 그냥 걸음을 옮겼습니다. 크게 기분 상할 일도 아니고, 종일 담아 둘 일도 아닙니다. 다만 자리에 앉고 나서도 뻘쭘한 기분이 조금 오래 남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도 비슷한 몇 초가 지나갑니다. 여럿이 함께 탄 자리에서 목례를 하면, 상대는 저를 지나 안쪽에 선 분과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겪어 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장면은 대개 이름 붙일 것도 없이 지나갑니다.

인사는 한 번이 아니라 왕복입니다

인사를 소리 두 번이 오간 일로 보면, 이 장면에는 빠진 것이 없습니다. 인사가 있었고 답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반 박자를 천천히 늘려 놓고 보면, 인사에서 실제로 오가는 것은 소리가 아닙니다. 제가 건넨 말에 상대가 답을 할 때, 그 답에는 '당신이 저를 불렀군요'라는 확인이 함께 실려 돌아옵니다. 그 확인이 도착해야 인사 한 번이 닫힙니다.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사람이 사람으로 서는 그 일을 '인정(Anerkennung)'이라고 불렀습니다. 말은 딱딱하지만 뜻은 단순합니다. 내가 한 일과 내가 건넨 것이 '나에게서 왔다'고 되돌아올 때, 사람은 비로소 한 사람으로 선다는 생각입니다. 되돌아오지 않으면 그 말은 허공에 흩어지는 게 아니라, 어디론가 가긴 갔는데 나에게서 출발했다는 사실만 떨어져 나갑니다.

그 눈으로 현관 앞의 몇 초를 다시 놓아 보면, 없었던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소리는 두 번 다 났고, 표정도 밝았습니다. 다만 그 답이 되돌아온 곳이 처음 소리를 낸 사람 쪽은 아니었습니다. 두 개의 인사가 각각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고, 그중 하나는 출발한 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채 끝났습니다.

이 장면을 그분의 무심함으로 정리하면 이야기가 금방 끝납니다. 그보다 눈에 걸리는 건, 사람의 눈이 어떤 순서로 움직이도록 되어 있었는가입니다. 어느 자리에나 먼저 눈에 들어오도록 되어 있는 얼굴이 있습니다. 자주 마주치는 얼굴, 이름과 직함이 이미 붙어 있는 얼굴. 눈은 대개 그 길을 따라 흐르고, 그 길 위에 아직 이름이 없는 사람은 시선이 지나가는 구간에 놓입니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 없던 것은 친절이 아니라, 먼저 인사를 건넨 쪽이 누구였는지를 되짚어 볼 여지였습니다.

같은 반 박자가 지나가는 자리들

진료실에서도 그 반 박자가 지나갑니다. 함께 들어간 보호자에게 설명이 가고, 정작 아픈 당사자는 옆에서 자기 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만 있습니다. 질문도 대답도 보호자 쪽에서 오갑니다. 몸의 주인은 그 대화의 어느 쪽에도 놓이지 않습니다.

회의 자리에서는 제가 꺼낸 말에 아무 반응이 없다가, 잠시 뒤 옆자리에서 같은 말이 나오자 그제야 고개들이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집에서도 아이가 한 말의 답이 아이가 아니라 곁의 어른에게 가는 일이 있습니다.

이 자리들의 공통점은 누가 무시당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말은 오갔고, 필요한 정보도 대체로 전달되었습니다. 다만 그 말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받아 두는 자리가 어디에도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출발지가 지워진 말은 계속 오갈 수 있고, 그래서 아무 문제 없이 하루가 굴러갑니다.

이 물음을 정면으로 붙들고 있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Kampf um Anerkennung, 1992)입니다. 사람은 혼자 힘으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인정을 주고받으며 비로소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선다는 것을 '인정'이라는 축 하나로 풀어낸 책입니다.

이 책이 오늘 장면과 닿는 지점은 크기입니다. 인정이라는 말은 대개 상이나 승진처럼 큰 것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 책은 훨씬 작은 몸짓에서 시작합니다. 눈을 맞추는 일, 이름을 부르는 일, 건네받은 것을 건넨 사람에게 되돌려 주는 일. 매일 수십 번 스치는 그 작은 왕복이 어떻게 한 사람을 사람으로 세우는지, 그 구조를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저는 이런 장면을 그동안 인사를 건넨 쪽에서만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답례를 건네는 쪽이었던 적이 훨씬 많았습니다. 문 앞에서 여러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올 때 저는 아는 얼굴부터 찾았고, 누가 먼저 소리를 냈는지는 되짚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 인사를 받지 못한 사람이 있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오늘 하루에도 인사는 여러 번 오갔을 겁니다. 그중에는 제 앞을 지나 뒤쪽 어딘가로 향한 것도 있었을 테고, 제 입에서 나가 엉뚱한 얼굴 앞에 멈춘 것도 있었을 겁니다. 오늘 저에게 온 말들은 누구에게서 출발한 것이었을까요. 그리고 제가 건넨 답은, 그 출발한 자리까지 되돌아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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