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록에 없는 한 줄
회의가 시작되기 십 분쯤 전이었습니다. 탕비실에서 커피를 따르다가, 요즘 걸리던 문제를 이렇게 풀면 어떨까 하고 툭 말을 꺼냈습니다. 정리된 문장도 아니었고, 어디 적어 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옆에 있던 분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걸로 끝인 줄 알았습니다.
회의가 시작되고 한참 뒤에 그 말이 다시 나왔습니다. 제 입에서가 아니라 앞자리에서, 아까보다 훨씬 매끄럽게 정리된 문장으로요. 좋은 생각이라는 반응이 몇 마디 오갔고, 회의는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습니다. 그 몇 초 동안 손을 들까 말까 망설였지만 결국 들지 않았습니다. 그거 아까 제가 한 말인데요, 라고 하기엔 시점이 지났고, 무엇보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제가 작아 보일 것 같았습니다.
비슷한 자리는 다른 모양으로도 있습니다. 초안을 만들어 공유 문서에 올려 두면 여러 사람의 손이 지나가고, 최종본 맨 위에는 마지막으로 저장한 사람의 이름이 남습니다. 아무도 무엇을 가져가지 않았는데, 문서를 열어 보면 이것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사라진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눈은 대개 그 윗사람 쪽으로 먼저 갑니다. 그런데 그쪽만 오래 보고 있으면 놓치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날 그 아이디어는 아주 잘 지냈다는 사실입니다. 회의에서 멀쩡히 쓰였고, 좋은 평가까지 받았고, 아마 다음 주에는 일정표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을 겁니다. 없어진 것은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사람이 '나'로 서는 일을 혼자 하는 일로 보지 않았습니다. 내가 한 일이 다른 사람을 한 번 지나 다시 나에게 도착할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조금씩 또렷해진다고 봤습니다. 그러니 그날 돌아오지 않은 것은 칭찬 한마디가 아닙니다. 무언가를 처음 만들어 낸 사람으로 그 자리에 등록될 기회 쪽입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눈이 회의록으로 옮겨 갑니다. 회의록에는 적어야 할 자리가 정해져 있습니다. 안건, 결정된 것, 맡을 사람, 언제까지. 전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적는 자리입니다. 이 말이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적는 자리는 대개 없습니다. 없어도 일은 아무 문제 없이 굴러갑니다. 오히려 매끄럽게 굴러갈수록, 그런 자리가 없다는 사실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디어의 출처를 밝히는 일은 어느 서식에도 요구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의 성품에만 맡겨져 있습니다. 성품에 맡겨진 것은 바쁜 날에 제일 먼저 빠집니다. 그리고 반년쯤 지나 그 아이디어가 성과로 돌아왔을 때, 그 옆에 놓일 이름은 이미 오래전에 정해져 있습니다. 그날 적혀 있던 이름으로요. 누가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라, 적어 두는 자리가 없어서 그렇게 됩니다.
대표해서 말하는 자리만 있을 때
같은 배치는 집에도 있습니다. 명절에 여럿이 나눠 만든 음식이 상에 올라가면, 인사는 대개 상을 내온 사람에게 갑니다. 학교 조별 과제도 그렇습니다. 발표를 맡은 학생의 이름이 그대로 그 조의 이름이 되고, 밤에 자료를 뒤진 사람은 마지막 장 구석에만 남습니다. 병동에서는 밤새 환자 상태를 지켜본 사람과 아침 회진에서 그 상태를 설명하는 사람이 다릅니다.
여기 어디에도 무언가를 가로챈 사람은 없습니다. 상은 누군가 내와야 하고, 발표는 누군가 해야 하고, 회진에서는 한 사람이 대표해서 말해야 합니다. 대표해서 말하는 자리는 꼭 필요합니다. 다만 그 자리만 있고 처음 그 일을 시작한 사람을 되짚는 자리가 따로 없으면, 대표해서 말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출처가 됩니다. 아무도 그렇게 정하지 않았는데도요.
찰스 테일러가 이 생각을 짧게 풀어 놓은 책이 『불안한 현대 사회』(The Malaise of Modernity, 1991)입니다. 나답게 살라는 말이 흔해진 시대에 왜 그 나다움이 자꾸 공허해지는지를 다룹니다. 테일러는 개인주의를 나무라는 대신 그 안에 들어 있는 진짜 이상을 건져내려 하고, 그러면서 그 진짜 나다움조차 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남과 주고받는 말과 인정 속에서 빚어진다고요.
오늘 장면과 겹쳐 읽으면, 회의실에 없던 그 한 줄이 조금 달리 보입니다. 이 책에서 그것은 있으면 좋은 예의 쪽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으로 서는 데 없어선 안 될 조건 쪽에 놓입니다. 강연을 옮긴 책이라 두껍지 않고, 문장도 어렵지 않습니다.
회의에서 대표로 말하는 자리에 앉아 본 적이 있습니다. 저희 쪽에서 이런 안이 나왔습니다, 하고 말했고 거짓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저희 쪽의 누구였는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없어서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름 하나를 붙이는 데는 삼 초면 충분했습니다. 그날 아낀 삼 초가 무엇을 아낀 것인지는 한참 뒤에야 생각해 봤습니다.
퇴근길에 오늘을 한 번 되감아 보면, 제 입을 거쳐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간 말이 여럿 있었을 겁니다. 그중에 어디에서 왔는지까지 함께 실어 보낸 말은 몇이나 될까요. 그리고 제가 만드는 자리에는, 그걸 적어 둘 한 줄이 어디쯤 놓여 있을까요.
📱 매일 한 편의 깨달음 · dignity.ppai-lab.com
🏛 PPAI Lab 형제 채널 — 칼립소(매일 한 편의 이야기) · 칼리오페(매일 한 편의 시) · 플루투스(오늘의 시장)
© 2026 PPAI Lab · Dignity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