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길을 바꾼 뒤에
아침에 자리에 앉습니다. 예전 같으면 컴퓨터가 채 켜지기도 전에 누가 옆에 와 섰습니다. 이거 전에 한번 있었던 건 같은데 그때 어떻게 처리했었죠, 하고요. 오전에 두어 번, 오후에도 비슷하게. 그러다 보면 하루가 갔습니다.
요즘은 하루가 다 가도록 그런 발걸음이 오지 않습니다. 사무실이 한가해진 것도 아닙니다. 옆에서 누가 막혀 한숨 쉬는 소리도 들립니다. 다만 그 다음 발걸음이 이쪽으로 오지 않을 뿐입니다. 정년이 가까워졌다는 이야기가 한 바퀴 돈 뒤로는 더 그렇습니다.
사내 메신저 방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옵니다. 누군가 질문을 올리고 잠시 뒤 다른 사람이 답을 답니다. 그 답을 읽다가, 저건 그렇게만 하면 나중에 한 번 더 걸리는데,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자판 위에 손이 잠깐 머물다 그냥 내려옵니다.
물음은 줄지 않았습니다
이런 하루는 보통 서운함이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그런데 조금 떨어져서 보면 그날 물음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오늘도 막혔고, 막힌 사람은 어딘가에 묻습니다. 물음의 양은 그대로인데 도착하는 곳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이제 그것들은 매뉴얼로 가고, 검색창으로 가고, 새로 온 담당자에게로 갑니다.
헤겔은 사람의 자기의식이 혼자 힘으로 서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봐 줄 때 비로소 선다고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대목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 안에서 완성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한 번 거쳐 나에게 돌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눈으로 보면 '이건 저분이 잘 안다'는 자리는 한번 얻어 두면 계속 가지고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누군가 찾아와 물어 줄 때마다 새로 세워지는 자리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묻는 일은 정보를 얻는 일만은 아닙니다. 그 사람을 아는 사람으로 한 번 더 세워 두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눈이 서류 쪽으로 갑니다. 인수인계서에는 적을 자리가 정해져 있습니다. 맡던 업무, 진행 중인 건, 파일이 있는 위치, 연락해야 할 곳. 전부 옮겨지는 것들의 목록입니다. 그런데 이건 앞으로도 저분에게 물어도 된다고 적어 둘 칸은 없습니다. 없어도 업무는 굴러갑니다. 매끄럽게 굴러갈수록 그 칸이 없다는 사실은 더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래서 묻는 일은 규정이 아니라 각자의 습관과 그날의 여유에 걸려 있습니다. 거기에 곧 떠날 사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배려가 한 겹 더 얹힙니다. 이제 와서 번거롭게 해 드릴 것 없다는 마음이요. 나쁜 뜻이 하나도 없는 그 마음이 결과적으로는 문 하나를 조용히 닫습니다. 앎은 그대로 있는데, 그 앎이 놓일 자리가 먼저 비워지는 셈입니다.
같은 조용함이 있는 자리들
이 배치는 회사 밖에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집에 전화를 걸 일이 많았습니다. 김치를 어떻게 담그는지, 보일러가 이런 소리를 내면 어디가 고장인지. 지금은 검색창에 넣으면 몇 초입니다. 통화가 짧아진 게 사이가 멀어져서만은 아닙니다. 물어야 할 이유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간 쪽에 가깝습니다.
병동에서도 비슷한 순서를 봅니다. 오래 일한 사람은 환자 얼굴빛만 보고도 오늘은 좀 이상하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 그 짐작을 적어 넣을 칸이 전산 화면에는 없습니다. 학교도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옆 반 선생님께 묻던 것들이 지금은 공문과 지침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누구를 탓할 대목은 여기 없습니다. 매뉴얼은 좋은 것이고 검색은 편리합니다. 다만 답에 이르는 길이 늘어날수록, 사람을 거쳐 가던 길 하나가 덜 밟힙니다. 그 길은 막혀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아무도 지나가지 않아서 사라지고, 그렇게 없어지는 것에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 헤겔의 『정신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 1807)입니다. 사람의 의식이 어떤 단계를 거쳐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는지를 따라가는 책이고, 그중 자기의식을 다루는 장에 주인과 노예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사람이 마주 섰을 때 무엇이 사람을 사람으로 세우는가를 두고, 헤겔은 힘이나 소유가 아니라 서로를 알아보는 일 쪽을 봅니다.
어렵기로 이름난 책이지만 그 대목만은 이백 년 넘게 거듭 읽혀 왔습니다. 인정을 예의나 기분의 문제로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로 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조건 쪽에 놓았습니다. 오늘 조용히 닫힌 그 자리가 왜 한 사람을 세우던 자리였는지 뿌리를 짚어 보고 싶을 때 펼쳐 볼 만합니다.
저도 얼마 전에 일이 하나 막혔습니다. 답을 알 만한 분 얼굴이 잠깐 떠올랐는데, 바쁘실 것 같았고 이 정도는 혼자 해결하는 게 맞다 싶어 검색창을 열었습니다. 오 분쯤 걸려 답을 찾았고 그날은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그 오 분을 아끼면서 같이 지나간 게 무엇이었는지는 그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하루에도 막혀서 잠깐 멈춰 선 순간이 한두 번은 있었을 겁니다. 그때 발길은 어디로 향했을까요. 향하기 직전에 스쳤다가 접힌 얼굴이 있지는 않았을까요. 이 물음은 반대쪽으로도 섭니다. 오늘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 온 사람은 있었는지, 그런 물음이 마지막으로 온 게 언제였는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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