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가 비는 일과 사람이 떠나는 일
그만두겠다는 말은 대개 한 번에 나오지 않습니다. 언제 꺼낼지, 첫 문장을 무엇으로 할지 몇 번이고 고른 끝에야 겨우 입 밖으로 나오지요. 그렇게 꺼낸 말에 “안 맞으면 다른 사람 뽑으면 되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저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건넨 한마디였습니다.
비슷한 장면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퇴사 소식이 알려진 그 주에 같은 자리의 채용 공고가 먼저 올라오는 일, 송별 인사보다 인수인계 양식이 먼저 도착하는 일. 어느 쪽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일은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상하지 않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그 순간에 무엇이 조용히 지나갔는지는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자리를 채우는 말, 사람을 향한 말
이 장면을 조금 다른 쪽에서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18세기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사람을 결코 한낱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도 대하라고 했습니다. 흔히 ‘목적의 정식’이라 부르는 원칙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글자는 ‘만’입니다. 사람이 서로에게 수단이 되는 일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 누군가의 일에 기대어 삽니다. 문제는 한 사람이 오직 기능으로만, 어떤 자리를 채우는 무엇으로만 여겨질 때입니다.
이 원칙 곁에 ‘다른 사람 뽑으면 되지’라는 대답을 놓아 보겠습니다. 그 대답이 실제로 응답하고 있는 질문은 “이제 이 일은 누가 하지?”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또 하나의 질문이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지금 떠나겠다고 말한 이 사람은 그동안 여기서 무엇을 해 왔고, 왜 떠나려 하는가. 앞의 질문에만 답이 돌아오고 뒤의 질문은 아무도 꺼내지 않은 채 대화가 끝났다면, 그 장면에서 비어 있던 건 바로 두 번째 질문의 자리입니다.
이 원칙을 세운 같은 책에는 이런 구분도 나옵니다. 같은 값어치의 다른 것으로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에는 값이 있고,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에는 존엄이 있다는 구분입니다. 역할은 앞쪽에 속합니다. 같은 일을 해낼 사람은 언젠가 구해집니다. 하지만 그 일을 해 오던 한 사람의 시간과 이유는 뒤쪽에 속합니다. 자리는 다시 채워질 수 있어도, 그 자리를 떠나는 사람은 누구로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대답을 한 사람을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조직은 원래 한 사람이 빠져도 멈추지 않도록 짜여 있고, 직무의 칸과 인원의 칸, 인수인계와 정산의 칸은 늘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 어디에도 ‘이 사람이 여기서 무엇을 남겼는가’, ‘왜 떠나려 하는가’를 적어 둘 칸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칸이 없으니 묻지 않게 되고, 묻지 않으니 대답은 자연스럽게 자리 쪽으로만 흘러갑니다. 그 한마디가 남긴 서늘함은 누군가의 차가운 마음보다, 처음부터 비어 있던 그 칸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루 곳곳의 같은 모양
이 시선으로 하루를 둘러보면 비슷한 순간이 적지 않습니다. 병원 대기실에서는 이름 대신 번호가 불리고, 진료실에서는 증상이 먼저 오가고 사람은 그 뒤에 남습니다. 번호는 꼭 필요한 장치지만, 그 번호 뒤에 한 사람이 앉아 있다는 사실이 놓일 틈이 얼마나 되는지는 한번 생각해 볼 만합니다.
집 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족 중 누군가 몸져누웠을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그럼 저녁은 누가 해?”, “애는 누가 데려와?”일 때가 있습니다. 누구도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다만 그 순간 식탁 위에는 비어 버린 역할이 먼저 올라오고, 아픈 한 사람은 그다음 차례가 됩니다. 교실에서 조별 과제를 두고 “걔 빠지면 다른 애 넣으면 되지”라는 말이 오갈 때도, 같은 모양이 조용히 되풀이됩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앞서 이야기한 원칙이 처음 모습을 갖춘 책은 칸트의 『도덕형이상학 정초』(1785)입니다. 도덕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 원칙이 무엇인지 찾아 나선 책으로, 두께는 얇지만 쉽게 넘어가는 책은 아닙니다. 그 원칙을 여러 방식으로 풀어 보이는 대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람을 언제나 목적으로도 대하라는 정식이고, 값과 존엄을 가르는 구분도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을 오늘 장면 곁에 두면, ‘다른 사람 뽑으면 되지’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데도 왜 어딘가 서늘하게 남는지가 조금 또렷해집니다. 그 말은 일을 이어 가기에는 충분했지만, 떠나는 한 사람을 목적으로 마주하는 데까지는 가지 않았으니까요. 한 문단씩 오늘의 장면을 떠올리며 천천히 넘겨 보셔도 좋겠습니다.
사실 저도 이런 장면을 오래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 왔습니다. 누군가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으면 제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것도 “그 일은 이제 누가 맡지?”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 무엇이 가장 버거웠는지 묻는 말은 한참 뒤에야 떠올랐지요. 자리를 먼저 떠올리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사람을 떠올리는 순서가 늘 그 뒤에만 머문다면, 그건 한번 돌아볼 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거나 누군가의 빈자리를 이야기하게 된다면, 잠깐 멈춰 보셔도 좋겠습니다. 그 말끝에 서 있던 것은 그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그 사람이 맡고 있던 일이었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날마다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우리 자신은 누군가에게 어느 쪽으로 불리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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