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사라지도록 되어 있는 일
저녁상이 차려집니다. 국에서는 아직 김이 오르고, 접시는 어제와 조금 다른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나면 그릇이 개수대로 옮겨지고, 물소리가 잠깐 나다가 그칩니다. 잠시 뒤 부엌은 아침에 보았던 모습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방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자국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어느 집에서는 이런 말이 오갔다고 합니다. 하루 세 번 상을 차리고 그 사이사이 닦고 개어 두는 일에 대해 한마디를 건넸더니, 돌아온 대답이 "원래 하는 건데 뭘"이었다고요. 모질게 하려던 말은 아니었을 겁니다. 다만 그 말이 나오면 이야기는 거기서 접히고, 곧 다음 끼니 준비가 시작됩니다. 같은 대화가 하루에 몇 번이고 지나갑니다. 이런 장면이 유별난 집에만 있지도 않습니다. 며칠 앓고 일어났는데 집 안이 그대로 굴러가고 있던 아침, 늦게 들어와도 식탁에 덮여 있던 그릇. 되어 있는 것은 매일 만나는데, 그것이 누구의 손을 지나왔는지는 좀처럼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원래'라는 두 글자가 앉아 있는 자리 "원래 하는 건데 뭘"이라는 문장을 천천히 읽어 보면 빠진 것이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가 무엇을 했다는 말이 들어설 자리에 '원래'라는 두 글자가 대신 들어앉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일은 사람이 한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런 상태였던 것처럼 들립니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의 '주인과 노예' 대목에서, 시키는 쪽이 아니라 실제로 손을 대는 쪽이 오히려 자기를 세우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어려운 말 같지만 이유는 단순합니다. 손을 댄 것은 세상에 남고, 남은 것은 만든 사람에게 되돌아와 '이건 내가 한 것'이라고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깎아 놓은 나무, 지어 놓은 집처럼요. 그런데 살림은 남지 않는 쪽으로 되어 있는 일입니다. 차린 밥은 먹혀서 없어지고, 닦은 바닥은 곧 다시 밟히고, 갠 옷은 다시 입혀져 흐트러집니다. 결과가 사라져야 제대로...